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11일(현지시간) 발표한 제조업 분야의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 내용은 주요 대미 무역흑자국을 추려서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지난해 4월 ‘해방의 날’ 당시 미국 정부는 “지속적인 무역적자는 관세 및 비관세 요인의 조합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순수출 금액(수출-수입)’을 수입으로 나눈 값에 0.5를 곱하는 이상한 수식으로 상호관세를 산출했다.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자체를 ‘미국을 벗겨먹은’ 결과로 본 것이다.◇ ‘무역흑자=과잉 생산’이라는 美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이날 발표도 같은 논리를 담았다. 다른 나라가 투자해서 생산을 많이 하고 수출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관점이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브리핑에서 “(교역국의) 과잉 생산 능력은 과잉 생산, 지속적인 무역흑자, 제조업 생산능력의 미활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USTR은 글로벌 제조업 가동률이 75.0~75.9%라며 이것이 건전한 가동률(80%)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미국 제조업의 부진 원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 “대규모 또는 지속적인 무역흑자를 통해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과 생산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전자기기,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기계, 철강, 선박 및 해양 장비 등의 수출을 중심으로 글로벌 상품 무역흑자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석유화학 분야 생산 능력 감축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감산 위기에 내몰린 한국 기업들의 어려움을 대미 흑자 때문으로 거론한 것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비슷한 논지를 반복했다. 일본에 대해선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도 계속 운영되는 일본 기업의 비율이 일본 경제의 과잉 생산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했고, 노르웨이를 향해선 “수산물 수출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 구조적 과잉 생산 능력 때문”이라고 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석유 수익을 자국 통화가 아니라 미 달러 등으로 바꿔 해외에 투자하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이는 해외 자산 비중이 58%에 달하는 한국 국민연금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논리다. 기축통화국으로서 달러가 각종 거래의 수단이 되는 것을 미국 스스로 문제 삼는 형국이다.◇ 中과 동맹국 동시 겨냥중국의 과잉 생산과 보조금을 통한 시장 점유율 확보 정책이 ‘밀어내기 수출’(덤핑)로 이어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 하지만 중국의 문제와 다른 모든 나라에 대한 불만을 일괄적으로 묶어 ‘타국의 생산 과잉’을 미국의 무역적자와 제조업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경제학의 ‘국민계정 항등식’에 따르면 순수출(NX)은 초과저축(S-I)과 정부 재정수지(T-G)를 합한 금액이다. 동일한 조건하에서 순수출을 늘리려면 소비와 투자, 재정지출을 줄여야 한다. 미국은 자국 소비가 저축에 비해 많고 정부 재정적자가 심각하다는 근본 원인은 전혀 거론하지 않았다.
모리스 옵스펠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미국 무역적자에 관한 세 가지 신화’라는 논문에서 “미국의 무역적자는 미국 내부 요인이 지배적인 경우가 많다”며 “연방정부 재정적자가 커지면 수입관세를 높이더라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오히려 증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가 강조하는 상품교역과 달리 빅테크와 금융·법률서비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교역 부문에서 미국은 줄곧 흑자를 보고 있다. 대미 투자가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2024년 기준 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 총금액 중 5분의 1이 미국 몫이었다.
한국의 무역흑자 규모가 최근 커진 이유는 대미 투자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중간재 수출이 증가한 영향이 크지만,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거듭된 해명에도 모른 척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치 논리를 밀어붙이기 위해 경제 논리는 무시되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