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중동 위기 속 교민 수송에 몸사린 국적 항공사

입력 2026-03-12 17:33
수정 2026-03-13 00:08
“‘국가대표 항공사’라며 영업해 왔는데 정작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물러선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최근 중동 교민 귀국 작전을 두고 한 정부 당국자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군사 충돌로 중동의 전운이 짙어진 지난 9일, 현지에 체류하던 우리 국민 200여 명을 태운 전세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활주로에 멈춰 선 비행기 동체에는 태극 문양이 아니라 아랍에미리트(UAE) 에티하드항공의 로고가 선명했다. 대한민국 재외국민 수송 작전에 왜 우리 국적기가 아닌 외국 항공사가 등장한 것일까.

사정은 이랬다. 외교부는 이달 초 대한항공과 전세기 운항 가능성을 협의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대한항공은 운항을 검토했지만 미사일 피격 등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처음에 전세기를 준비 중이던 공항에서 안전 위협에 노출된 공항으로 목적지가 변경돼 무리한 운항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입장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우리 국민을 실어 나르는 주체가 외국 항공사라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통상 재외국민 철수 작전에는 국적기가 활용된다. 2017년 인도네시아 발리 화산 분화 당시에는 아시아나항공 전세기가 투입돼 한국인 266명을 귀국시켰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에는 대한항공 전세기가 중국 우한으로 향해 교민을 수송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란 전쟁 포화 속에서 프랑스는 이달 4일 에어프랑스 전세기를 오만에 보내 자국민을 데려왔고, 영국도 5일 브리티시항공 전세기를 투입했다. 7일엔 불가리아 국적기인 불가리아항공 전세기가 두바이 공항에 착륙했다.

국가 기관도 아닌 민간 기업인 대한항공이 기장과 승무원의 안전을 우선하겠다는 판단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다. 다만 재외국민 보호라는 공적 기능을 국적기가 아니라 외국 항공사의 선의에 맡겨야 하는 구조가 정상적인지 따져봐야 한다. 외항사는 자국 정부의 방침이나 운항 스케줄 등에 따라 우선순위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추후 전쟁이 확전될 경우 중동 지역에 남아 있는 1만4700여 명을 귀국시키기 위한 추가 작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 또한 전세기 추가 투입을 검토 중이다. 이때 공군기를 투입하거나, 민항기를 임차하되 군인을 승무원 대신 투입하는 등 항공사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외항사에 의존하지 않고도 재외국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한항공이 머리를 맞대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