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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자 글로벌 유조선들이 이 해협을 통과하면서 ‘정체’를 숨기고 있다. 이란의 표적 식별을 피하기 위해 자동식별시스템(AIS)을 끄고 운항하거나 이란과 친한 중국 선박임을 강조하는 식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6일부터 10일까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 중 이란이나 러시아와 무관한 선박은 단 두 척에 불과했다. 하나는 라이베리아 선적 유조선 ‘선롱’호로, 지난 1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원유를 선적하고 3일 인도를 향해 출항했다. 해운 데이터 업체 로이드 리스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이 유조선의 마지막 위치 신호는 8일 호르무즈 해협 내부에서 잡혔다. 이후 운항 중단 상태가 됐다가 11일(현지시간)에 뭄바이 항에 도착했다. 힌두스탄 타임스는“위험한 구간을 항해하는 동안 발각되지 않기 위해 AIS를 껐음을 시사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라이베리아 선적 ‘시노오션’호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화물을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건너는 내내 AIS 선박 정보란에 ‘중국인 선주·전원 중국인 선원’이라는 문구를 송출했다. 지난 4일에도 벌크선 ‘아이언 메이든’호가 중국 소속임을 알리는 신호를 내보낸 뒤 봉쇄 해역을 빠져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전쟁 첫날인 지난달 28일에는 ‘보가지치’라는 연료 탱크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건너는 동안 ‘무슬림 선박 튀르키예’라고 입력하고 안전한 곳에서 원래 이름으로 바꿨다.
AIS 내 정보를 바꾸는 것은 선박들이 자주 사용하는 대응책이다. 후티 반군의 홍해 상선 공격 때도 홍해를 지나려는 상선들은 ‘이스라엘과 관계없음’, ‘모든 선원 무슬림’ 등의 메시지를 띄웠다. 이 밖에 무기를 교란하기 위해 위치정보시스템(GPS) 신호를 조작하는 위장술을 쓰는 선박들도 있다.
평소라면 호르무즈 해협에 하루에 100여척이 드나들었지만, 전쟁 발발 이후에는 통행량이 급감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은 대부분 이란의 ‘그림자 함대’에 속해있거나 러시아 에너지 산업과 관련돼 서방의 제재 대상이 된 선박들이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