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등 16개국에 대한 무역법 301조 조사 개시를 발표했다.
미무역대표부(USTR)는 3월 11일(현지 시간) 중국, 유럽연합(EU), 싱가포르, 스위스, 노르웨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태국, 한국, 베트남, 대만, 방글라데시, 멕시코, 일본, 인도 등 16개국에 대한 301조 조사 개시 내용을 발표하고 관보에 게재했다. “세계 과잉생산 능력이 문제” 주장
이날 조사의 핵심 대상은 ‘과잉생산’이다. 미국이 무역적자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USTR은 조사 대상이 된 나라들이 의도적으로 과잉생산을 하고 미국에 대한 무역흑자를 이어 왔다고 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는 이날 브리핑에서 “주요 무역 파트너들은 국내 및 글로벌 수요의 시장 인센티브와 부합하지 않는 생산 능력을 구축해 왔다”며 “이런 과잉생산 능력은 과잉생산, 지속적인 무역흑자, 제조업 생산 능력의 미활용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수많은 부문에서 많은 미국 무역 파트너들이 국내에서 소비할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해 왔다”며 “미국은 더 이상 과잉생산 능력 및 생산 문제를 우리에게 수출하는 다른 국가들에 산업 기반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어 대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보조금, 억제된 국내 임금, 국영기업의 비상업적 활동, 외국 수출품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는 시장 장벽, 부적절한 환경 또는 노동보호, 보조금 대출, 금융 억압 및 통화 관행 등 시장 수요와 동떨어진 생산 및 수출을 촉진하는 정책 등”을 꼽았다. “기존 무역협정 유효”
이번 조사는 지난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른 상호관세와 펜타닐 관세 등에 대한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예고되었던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상호관세가 무효가 되더라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관세를 상대 국가에 매길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 핵심 수단이 무역법 301조다. 상대 국가의 불공정 무역 행위를 근거로 이쪽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트럼프 1기에서 중국에 대한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근거로 사용되었고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만큼 법적 안정성은 훨씬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위헌판결 직후에 무역법 122조를 이용해 ‘글로벌 관세’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15%로 올리겠다고 SNS에 적기는 했지만 실제 적용은 아직 하지 않았다. 122조를 활용한 관세는 의회 승인 없이는 150일, 오는 7월 24일까지만 유효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3월 17일 무렵부터 4월 15일까지 의견 및 요청을 받아 5월 5일경 공개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종 청문일로부터 7일 후 당사자들은 반박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USTR은 설명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관련 무역 파트너와 협의한 후 USTR은 대응 조치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이는 “관세, 서비스 수수료, 협상 또는 기타 조치가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1기에서 중국에 대한 301조 조사 후 미국은 대중 관세 부과뿐만 아니라 재무부의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 강화 조치, 상무부의 수출통제 강화 조치, 지식재산권 관련 세계무역기구(WTO)에 대한 분쟁 제기 등을 함께 진행했다.
USTR은 이날 관보 게재에 앞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각국과 체결한 협정은 “독립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어 대표는 “각국은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낮추기로 합의했으며 미국은 특정 보충 관세를 조정했다”며 “이러한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덧붙였다. ‘고무줄 관세’ 어렵지만 관세 상한 없어
301조에 따른 관세는 한 번 부과하기 시작하면 더 올릴 수 있고 그 한계가 없다. 하지만 기존 IEEPA에 따른 관세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이 자의적으로 관세를 올렸다 내렸다 하기가 불편하다. 조사를 해서 미국의 피해 규모를 산정하고 거기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정당화 과정이 필요해서다. 미국 통상 전문가들은 15% 수준을 정당화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훨씬 높은 수준, 예를 들어 한국에 50%나 60%를 부과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한국은 한·미 FTA를 체결한 국가인 만큼 명백하게 관세로 미국을 차별한 것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비관세 장벽이다. 특히 미국 빅테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플랫폼 규제가 핵심 이슈가 될 전망이다. 앞서 쿠팡 투자회사들은 USTR에 한국에 대한 조사를 해달라고 청원한 것을 철회했는데 301조 조사가 곧 개시되면서 개별기업인 쿠팡 이슈가 그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또 국회에서 계류 중인 온라인플랫폼법 문제와 앞서 통과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등도 미국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문제다.
한국의 관심사 중 하나는 중국, 일본, 베트남, EU 같은 나라의 관세율과 한국에 대한 관세율이 어떤 수준으로 다르게 적용되느냐다. 일단 중국에 대한 관세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EU나 일본처럼 한국과 동일한 관세율을 적용한 나라에 대해 미국이 다시 한번 개별 협상을 시도해서 차별화된 관세를 적용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301조 조사 개시를 앞두고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잇달아 워싱턴을 방문하고 있다. 3월 초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워싱턴DC를 방문해 쿠팡 문제를 포함해 301조 조사 개시를 앞두고 의견을 개진했고 김민석 국무총리도 워싱턴DC와 뉴욕을 찾아 현지 관계자들을 접촉했다. 디지털 부문 추가 조사 ‘촉각’
한편 그리어 대표는 브리핑에서 3월 12일 오후 두 번째 301조 조사를 개시할 것이라고 공지했다.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제품의 수입 금지 조치와 다른 국가들이 유사한 조치를 시행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는 “각국 내부 상황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들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대외적 법률을 시행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조사는 약 60개국을 대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어 대표는 또 디지털 서비스세, 의약품 가격, 수산물 및 쌀 시장 접근성, 해양 오염 같은 환경 문제 등 미국 산업계가 제기해 온 문제들이 추가 조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과 같은 디지털 부문 비관세 장벽이 별도 논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그리어 대표는 또 품목관세 근거인 무역확장법 232조 대상이 추가되는 문제에 관해 “몇 주 안에 새로운 조치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이번 행정부 기간 동안 여전히 선택지 중 하나”라고만 언급했다.
워싱턴=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