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성분명 처방 의무화를 담은 법안을 심사하자 의료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법안이 강행될 경우 의약분업을 전면 거부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는 11일 수급 불안정 의약품을 대상으로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약사법 개정안을 심사 안건으로 상정했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특정 상품명이 아닌 의약품의 성분명으로 처방전을 발행하고 약사가 동일 성분 의약품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조제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해열진통제 ‘타이레놀’ 대신 성분명인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처방하는 형태다.
최근 해열진통제와 항생제, 소아용 의약품 등 일부 필수의약품의 품절 사태가 반복되면서 환자들이 처방전을 받고도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동일 성분 의약품 간 대체조제를 활성화하면 이 같은 수급 불안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약사법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급불안정 의약품'을 지정할 경우 의사와 치과의사가 해당 약을 처방할 때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의무적으로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약사 단체는 성분명 처방이 약품비 지출을 줄이고 대체 조제를 활성화해 의약품 선택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동일 성분 의약품 간 경쟁이 확대되면 약가 부담을 줄이는 효과 있다고 주장한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약가제도 개편을 통한 건강보험 재정 지속가능성 확보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왔다. 발제를 맡은 나영균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의약품 지출액은 969달러(약 150만원)로 OECD 평균(658달러)보다 47.3% 높다"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로 대체조제율을 80%까지 확대할 경우 약품비의 7조900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의사단체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통과했더라도 실제 임상에서 약효나 부작용 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날 오후 의협은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성분명 처방 저지 궐기대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성분명 처방 강행 시 의약분업 파기 선언'과 '수급불안정의약품 문제 책임을 의사에게 전가하는 악법시도 중단하라'는 팻말과 현수막을 들고 성분명처방 입법 중단을 촉구했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성분명 처방은 단순히 화학 성분을 선택하는 행위가 아니다"라며 "약물 선택은 환자의 종합적인 상태를 고려해 이뤄지는 고도의 전문적인 의료 행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약사단체가 실체가 불분명한 예산 절감을 운운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만, 그 어떤 예산도 국민의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다"며 "성분명 처방이 강행된다면 이를 의약정 합의의 일방적 파기로 간주하고 의약분업 제도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할 것"이라고 했다.
이민형 기자 mean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