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곳곳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상법 개정으로 주주환원 기조가 강화되자 LG화학, KCC 등 대기업부터 제노레이, 유바이오로직스 등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주주제안이 잇따르고 있다. 주로 자기주식(자사주) 비중이 높거나 주주환원에 인색한 상장 법인을 노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하반기 주주 권한이 강화된 개정 상법이 발효되기 전 마지막 주총이라는 점도 이번 주총 시즌의 관전 포인트다. ◇ 주주제안 주총 안건 상정 봇물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KCC는 기존 주총 소집 공고를 재공시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의 주주제안을 수용해 오는 26일 개최되는 주총에서 유휴 자산인 삼성물산 지분 유동화와 자사주 전량 소각 건을 다룰 예정이다. 영국 행동주의 펀드 팰리서캐피털은 이달 31일 LG화학 정기 주총을 앞두고 일반 주주에게 자신들의 주주제안 안건에 찬성표를 던져달라고 촉구했다. 팰리서캐피털은 이번 주총에서 선임 독립이사 제도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등을 요구했다.
소액주주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의결권을 결집하고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려는 움직임도 확산 중이다.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백신 제조업체 유바이오로직스의 소액주주연대는 회사를 상대로 사외이사 선임부터 감사 추가 선임, 신주 발행 시 주주 동의를 거치도록 정관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코스닥시장 상장사 제노레이와 매일홀딩스도 이번 정기 주총에서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을 두고 소액주주연대와 표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올해 주주제안 내용은 대체로 이사 선임과 주주환원 등이다. 특히 자사주 비중이 높거나 보유한 자산에 비해 주주환원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 상장사에 주주제안이 몰렸다. 자사주 비중이 17.2%에 달하는 KCC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물산 주식을 1701만 주 보유하고 있다. 전날 종가 기준 4조6437억원어치다. 이사 보수 한도 관련 안건도 눈에 띈다. 코나아이 소액주주들은 주주제안을 통해 이사 보수 한도를 기존보다 57%가량 줄인 15억원으로 제안했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올해 주총을 시작으로 대주주 권한보다 소액주주와 기타주주의 입김이 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개정 상법 시행 전 마지막 주총일부 상장사는 주주제안에 속앓이하고 있다. 5년 만에 당기순이익(83억원) 흑자를 낸 신풍제약은 100억원어치 자사주 매입과 주당 500원의 현금배당을 요구하는 소액주주연대의 주주제안서를 받았다. 작년 9월 말 기준 신풍제약 소액주주의 주식 수를 감안하면 약 160억원의 현금 배당을 요구한 것이다.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한 회사는 주총 안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주제안 상정을 두고 소송전으로 번지는 사례도 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이사 보수 공개를 권고하는 주주제안을 거부한 코스닥시장 상장사 가비아를 상대로 법원에 의안 상정 가처분을 제기했다.
상장사들도 이번 주총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삼성SDS는 18일 주총에서 이사 임기를 기존 3년에서 ‘3년 이내’로 바꾸는 안건을 올렸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 10개 계열사는 일제히 현행 2년 내인 임기를 ‘3년 혹은 3년 내’로 늘리는 정관 변경안을 제출했다. 상법 개정에 대비해 이사의 퇴임 시점을 분산한 뒤 주총에서 선임하는 이사 수를 최소화하려는 조치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9월 시행을 앞둔 집중투표제에서는 한 번에 선임되는 이사가 많을수록 소수 주주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코웨이를 상대로 행동주의에 나선 얼라인파트너스는 최근 주주제안한 사외이사 후보 2명을 지지해 달라고 주주들에게 당부했다. 이번 주주제안 안건이 부결되면 일반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를 선임할 기회가 3년 뒤로 미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법 개정으로 하반기부터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최대주주 의결권 행사에 제약이 더욱 커지는 점도 기업에는 부담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요 기업은 상법 개정 시행 전인 이번 주총에서 선제적으로 분리 선출 요건을 갖춘 감사위원 선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