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초장기 국채 수요 급감…1조 달러 자본 이동이 글로벌 시장 흔든다 [글로벌 머니 X파일]

입력 2026-03-13 07:00
수정 2026-03-13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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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20~40년 만기 장기 국채의 실수요가 구조적으로 감소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대형 생명보험사 등들이 관련 투자를 줄인 영향이다. 1조 달러 규모의 글로벌 자본 유동성이 흔들리면서 세계 금융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 장기 국채 수요 감소13일 외신 등에 따르면 다카타 하지메 일본은행(BOJ) 정책위원은 지난달 "초장기 일본 국채에 대한 투자 수요 약화는 예기치 못한 구조 변화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자산 매입 축소에 따라 민간이 소화해야 할 국채 잔액 증가 폭이 2000년대 초반 양적완화기의 역사적 정점을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일본 장기 중앙정부 채무 잔액은 1120조 3,000억 엔에 이른다. 재무성이 발표한 2026 회계연도 국채 발행 계획을 보면 시장의 병목 현상이 집중된 20년물, 30년물, 40년물 초장기 국채 발행량을 각각 매월 1000억 엔씩 삭감해 연간 총 4조 엔의 초장기물 공급을 시장에서 거두어들였다. 반면 10년물 이하 단기 및 중기 구간의 발행량은 전년 수준을 유지하거나 증액 편성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초장기 국채 시장의 수요 감소는 일본 금융 산업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과 자산 배분 전략이 변한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과거 수십 년 동안 장기 국채의 핵심 구매자 역할을 해왔던 생명보험사와 연기금, 시중은행 등이 관련 투자를 줄였기 때문이다.

일본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자산부채종합관리 규제에 대응하면서 신규 자금 유입이 감소했다. 생보사들은 엄격한 자본 규제에 맞추기 위해 필요한 장기 자산의 보유 기준을 이미 충족한 상태다.

펀더멘털의 불확실성이 큰 변동성 장세에서 굳이 채권 가격 하락에 따른 막대한 평가손실 리스크를 추가로 짊어지며 공격적으로 신규 매수에 나설 동기가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일본 은행도 국채 만기 축소에 적극적이다. 과거 넘치는 예금을 바탕으로 일본 국채 시장을 떠받치던 은행들은 최근 대출-예금 갭 축소라는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금리 상승에 따른 보유 채권 미실현 손실을 막기 위해 만기가 긴 채권을 기피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즈호 은행의 작년 12월 말 기준 일본 국채 평균 잔존만기는 1.8년 수준까지 단축됐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초장기 현물 일본 국채 거래 시장 내 외국인(헤지펀드 등 포함)의 거래 비중은 2024년 12월 13%에서 2025년 12월 46%로 약 3.5배 급증했다. 크리스 스키클루나 다이와 캐피털마켓 유럽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초장기 구간은 사실상 '패스트머니'가 좌우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패스트머니의 부상장기 부채 매칭을 중시하는 실수요자와 달리 패스트머니는 거시 지표, 금리차, 현선물 차익거래 갭에 틱 단위로 반응하기 쉽다. 이에 따라 사소한 경제 지표 충격이나 일본 주요 인사의 돌발 발언만으로도 매도 알고리즘이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금리가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극심한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일본 국채 장기 시장 상황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장기간 제로 금리 시대에 예대마진 압박에 시달리던 상업 은행에 최근 금리 상승은 긍정적일 수 있다. 다만 이런 단기적 지표 개선을 구조적 체질의 치유로 오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도 있다.

최근 국채 입찰 호조는 장기 부채 매칭을 위한 실수요 증가보다는 일본 재무성의 선제적인 물량 삭감 조치와 금리가 단기적으로 튀어 올랐을 때 기술적 차익을 노리고 몰려든 패스트머니의 수요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최근 일본 장기 국채 시장의 변화는 글로벌 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본은 세계 상위권의 순채권국이라는 지위로 글로벌 자본 시장의 밸류에이션을 밑바닥부터 뒤흔들 수 있다.

우선 세계 금융시장에서 장단기 금리 구조를 지탱하던 마지막 안전장치가 무너지면서, 각국 금융시장과 자산 가격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크게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바 일드 커브의 최후 지지선 붕괴에 따른 극단적 동조화 현상이다.

일드 커브(Yield Curve)는 만기(기간)에 따라 국채 금리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곡선이다. 일반적으로는 단기 금리보다 장기 금리가 더 높은 ‘우상향’ 구조를 보인다. 이는 장기간 돈을 빌려줄수록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이 구조를 떠받치던 마지막 방어선, 즉 ‘최후의 지지선’ 역할을 하던 금리 구간이 무너지면서 시장 구조가 급격히 흔들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기서 ‘지지선’이란 금융시장에서 가격이나 금리가 더 떨어지지 않도록 버티던 심리적·구조적 기준점을 뜻한다.



이 지지선이 무너지면 투자자들은 더 이상 시장이 안정적이라고 보지 않게 되고, 주식·채권·환율 등 여러 자산 시장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극단적 동조화라고 부른다.'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과거 10년 이상 글로벌 채권 시장에서 일본 채권은 가장 무거운 닻 역할을 수행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항상 저금리로 피신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했다. 이는 전 세계 차입 비용의 증가를 억제하는 기능을 했다. 그러나 일본 40년몰 등 장기 금리가 4%를 위협하며 치솟자 이 지지선이 무너진 것이다.

뇌관은 유동성의 대이동, 즉 1조 달러 이상으로 추정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일본의 대규모 기관 자본은 자국 내 제로 금리 때문에 환헤지 비용을 감수하고, 미국 국채, 유럽 회사채 등 해외 자산에 자본을 공급해 왔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작년 12월 말 기준 일본의 대외 장기 부채증권 자산은 368조 3000억 엔에 이른다.



그러나 자국 내 장기 금리가 매력적인 수익 구간에 진입하고 환헤지 비용이 증가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해외 자산에 자본을 묶어둘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유동성의 역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 거주자들은 지난달 한 달 동안 해외 장기 부채증권을 3조 4216억 엔 순매도했다. 수백억 달러의 일본계 자본이 해외 채권 자산을 투매하고 본국(일본) 시장으로 돌아갈 경우, 서방 세계의 채권 시장은 큰 유동성 공백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도 영향을 받는다. 일본 국채 금리가 치솟아 글로벌 일드 커브의 기준점이 오르면 일본 국채보다 고금리 프리미엄을 앞세워 외국 자금을 끌어들인 한국 국채의 매력의 매력은 줄어든다. 투자자들은 위험 대비 수익률이 낮아진 한국 채권을 매도하고, 이는 한국 시장의 조달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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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