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시스템즈가 올해 북미에 에너지저장장치(ESS)용 양극박 공장을 신설한다. 인공지능(AI) 전력 수요로 급성장하는 북미 ESS 시장을 선점하고, 철강·알루미늄 관세 등 미국 무역 장벽을 돌파한다는 취지다. 양극박은 전자의 원활한 이동을 돕기 위해 배터리 내부에 장착하는 알루미늄판이다.
정용욱 동원시스템즈 2차전지 사업부문 대표(사진)는 1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 현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올해 북미 ESS 배터리용 양극박 공장과 전기차 배터리 캔 생산라인 건설에 착수할 계획"이라며 "공장 부지를 선정하는 막바지 단계로, 주요 글로벌 배터리셀 업체와 현지 공급 물량 협의를 마쳤다"고 했다.
동원시스템즈는 동원참치 캔 등 포장재를 제조하는 회사다. 2014년 알루미늄박 전문 기업 대한은박지 인수를 계기로 배터리 양극박을 비롯한 소재 사업에 뛰어들었다. 알루미늄 파우치 등 식품 포장에 사용되는 소재를 얇고 균일하게 가공하는 기술을 배터리 소재에 접목한 것이다. 작년 전체 매출은 1조3729억원으로. 이 중 약 15%가 2차전지 사업 부문에서 발생했다.
동원시스템즈는 2021년 원통형 배터리 캔 제조사인 엠케이씨(MKC)를 150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2022년 700억원을 들여 충남 아산 배터리 캔 공장을 증설했다. 작년부터는 아산 사업장에 코팅양극박(PCAF) 생산라인 2개를 도입해 양산을 앞두고 있다. 정 대표는 "북미 생산공장은 동원시스템즈의 역대 배터리 사업 투자 중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미에 들어서는 공장은 ESS 배터리용 코팅양극박 생산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알루미늄박에 카본 기초재(프라이머)를 코팅해 양극활 물질의 접착력을 높인 게 특징이다. ESS에 주로 쓰이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전자의 원활한 이동을 돕는 활물질이 양극박에 고르게 붙어 있어야 한다.
2차전지 사업부문 생산량 비중의 60%를 차지하는 배터리 캔 생산라인도 북미에 도입할 예정이다. 업계에선 프리미엄 전기차에 적용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 캔이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동원시스템즈는 테슬라 모델에도 들어가는 46파이형 원통형 배터리 캔 등을 생산한다.
동원시스템즈는 북미 생산 공장을 통해 빅테크 업체의 AI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한 ESS 수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전기 먹는 하마'로도 불리는 AI 데이터센터를 돌리려면 전력을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ESS 배터리가 필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배터리의 수입 허들을 높인 것도 한국 배터리 소재 업계에는 기회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중국을 금지외국기관(PFE)으로 지정하는 등 중국산 소재 비중이 높은 배터리를 활용하는 기업의 세액공제 혜택을 축소했다. 올해부터는 중국산 ESS에 고율 관세를 적용할 예정이다.
정 대표는 "북미 시장 전기차의 수요가 일시적으로 저조하지만, AI 데이터센터 시장 성장세를 내다본 선제적 투자"라며 "시장 성장세를 고려할 때 2035년이면 북미 공장에서 연간 조 단위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