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는 르네상스 이후 예술 분야의 최대 혁신이 될 겁니다.”
2021년 각종 미디어에서는 이 같은 NFT 찬양이 쏟아졌다. NFT란 디지털 파일에 ‘원본 증명서’를 붙여 사고팔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 기존 디지털 예술 작품은 실물이 없는 그림 파일이나 영상 데이터에 불과했지만, NFT를 사용하면 이런 작품도 명화(名畵)처럼 거액에 사고팔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기성 미술계도 이에 적극 호응했다.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글로벌 유력 경매사들은 NFT 경매를 신설했다. 중견 작가들은 너나할 것 없이 NFT 작품을 출시했다. “뭔가 수상하다”는 비판은 작품이 수억원에 팔렸다는 뉴스들에 묻혔다.
5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의 NFT는 휴짓조각만도 못한 신세가 됐다. 국내 최대 NFT 거래 플랫폼인 업비트 NFT에서 수천만원에 거래되던 작품들은 이제 10만원에 내놔도 사려는 이가 없다. 카카오 계열사에 소속돼 있던 거래 플랫폼 ‘클립 드롭스’는 한 중소기업에 인수됐다가 문을 닫았고, 이곳에서 구매한 NFT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해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NFT 가격과 거래량 등으로 산출하는 ‘크립토슬램 500 NFT 지수’는 2022년 고점 이후 99% 하락했다. 지난달 문을 닫은 ‘니프티 게이트웨이’를 비롯해 대부분의 대형 NFT 거래소가 서비스를 종료한 상태다.
“NFT 95%는 사망”
아이디어 자체는 좋았다. 디지털 작품은 파일만 복사하면 원본과 동일한 결과물이 나온다. 원본을 무한 복제할 수 있으니 가치를 평가받기도, 거래하기도 어려웠다.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사진작가들은 이 문제를 ‘에디션’이라는 방식으로 풀었다. 정해진 한정 수량만큼만 사진을 인쇄한 뒤 작가가 서명해 원본임을 인증하는 것이다.
NFT는 이 에디션 개념과 유사하다. 블록체인 기술로 디지털 파일이 ‘작가가 인증한 원본’임을 보증한다는 게 요체다. “작품의 존재와 소유권을 영원히 기록할 수 있다”는 게 NFT를 판매하는 업자들과 거래소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NFT의 실상은 이런 설명과 달랐다. NFT로 보존하겠다던 작품 대부분은 기술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블록체인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대신 작품 파일을 거래소 서버에 저장하고, 블록체인에는 그 서버 주소(링크)만 기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쉽게 비유하자면 “작품을 금고에 보관해주겠다”고 약속한 보관업자가 영수증만 금고(블록체인)에 보관하고 작품은 창고(서버)에 던져놓은 것이다. 이런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이 문제를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기술 전문가들은 예술에, 예술 전문가들은 기술에 자신이 없으니 공개적으로 강하게 의견을 내기 부담스럽다는 점도 문제였다.
NFT가 호황일 때는 이런 구조도 별 문제없이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불황이다. 2022년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죄기 시작하자 NFT 신규 구매자가 뚝 끊겼다. ‘나보다 더 비싸게 사줄 다음 사람’이 사라진 시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서버 전원이 끊기면서 NFT가 담고 있던 이미지 파일도 깨져버렸다. 나이키가 2021년 인수한 NFT 자회사 RTFKT가 대표적인 사례다. 나이키가 2024년 서비스를 종료하자 이곳에서 구입했던 NFT의 이미지가 표시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고, 구매자들은 나이키에 소송을 제기했다.
NFT 분석 업체 NFT이브닝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존하는 NFT의 95%가 이 같은 ‘사망 상태’다. 2021년 “NFT는 대세가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던 레딧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NFT 관련 서비스를 모두 종료했다. 지난달 개최가 예정돼 있던 유럽 최대 NFT 행사 ‘NFT 파리 2026’은 개최 한 달 전 취소됐고, 스폰서들은 환불조차 받지 못했다. 미술계와 블록체인 업계에서 “NFT는 너한테(N) 팔고(F) 튄다(T)의 약자”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AI(인공지능) 아트’로 역사 반복될까
한때 NFT를 요란하게 홍보하며 열풍을 부추겼던 미술 관계자들은 조용히 시장에서 발을 뺀 지 오래다. “NFT는 혁명”이라던 글로벌 경매사 크리스티는 지난해 디지털 아트 부서를 폐쇄했고, 소더비도 사실상 관련 사업을 접었다.
문제는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에서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 전문 매체인 오큘라 매거진은 최근 “AI로 생성한 이미지를 사고 파는 양상이 NFT 열풍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크리스티가 지난해 2월 AI 생성 이미지를 판매하는 경매를 연 게 단적인 예다. 당시 크리스티는 “AI 시대는 미술에서 인간이 수행하는 역할을 재정의한다”는 문구를 내걸었다.
미술계 관계자는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미술계가 호응하고, 사람들이 거액을 투자하고, 시장이 사그라들면 또 다른 유행이 등장하는 건 미술 시장에서 언제나 반복되는 일”이라며 “검증되지 않은 미술 관련 신기술에 투자하면 대부분 손해를 보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