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오를 것 같아요"…중동전쟁 이후 중고마켓서 불티난 게

입력 2026-03-10 17:31
수정 2026-03-11 00:17

“동네 주유소에 줄 서서 차가 들어가는 건 처음 봤습니다. 유가가 더 오를 것 같아 일단 가득 채워뒀죠.”(30대 직장인 이모씨)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의 한 주유소. L당 1899원에 휘발유를 판매하던 이곳에 차량 행렬이 이어졌다. 승용차와 배달 오토바이가 뒤섞여 주유소 앞 도로까지 긴 대기 줄이 늘어섰고 직원들은 차량 동선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이씨는 “지난번에는 영등포가 더 저렴해 그쪽에서 넣었고, 오늘은 이곳이 싸다고 해서 와봤더니 역시 줄이 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동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면서 국제 유가가 치솟자 국내 기름값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일부 운전자 사이에서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미리 가득 채워두려는 ‘패닉 주유’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할인 주유권’ 검색량이 늘었다. ◇중동전쟁 후 주유권 거래 급증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907원, 경유는 1931원을 기록했다. 중동지역 긴장이 고조되기 전인 지난달 27일을 기준으로 각각 12.6%, 20.9% 넘게 오른 수준이다.

주유소마다 가격이 1800원대에서 2500원대까지 천차만별로 벌어진 탓에 저렴한 주유소를 찾아 이동하는 ‘원정 주유’도 늘었다. 차량 통행이 많은 강남권과 서울역, 여의도 등 일부 지역 주 유소에서 선제적으로 기름값을 올리자 1800원대 주유소는 온라인에서 ‘기름 성지’로 공유되고 있다. 이날 중구의 한 주유소에서는 휘발유가 L당 2596원, 고급유는 2996원에 판매된 데 비해 동작구 한 주유소에서는 1793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주유권 할인 거래까지 등장하고 있다. 당근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는 5만원권 주유 상품권이 4만7000원에 판매되거나 특정 주유소에서 사용할 수 있는 주유권이 10~15%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당근에 따르면 플랫폼 내 ‘주유’ ‘주유권’ 등 관련 키워드 검색량은 전쟁 발발 직후 열흘간 직전 동기 대비 각각 18.2%, 29.1% 늘었다.

자가용 운전을 포기하는 사례도 나온다. 직장인 김모씨(37)는 “평소 하남에서 판교까지 자차로 출퇴근하는데 이번주부터 1시간 일찍 일어나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있다”며 “회사 주차장도 눈에 띄게 한산해졌다”고 말했다. ◇농가·운수업자 등 서민 시름 가중기름값 상승은 생계형 운전자에게도 큰 부담이다. 충북에서 8.5t 경유 화물차를 몰고 있는 허현무 씨(46)는 “보통 화물차 운전기사는 매출의 35%가량을 유류비로 쓰는데 불과 3~4일 만에 기름값이 L당 400원씩 뛰는 상황”이라며 “차 할부금 등 고정 비용이 있어 일은 해야 하는데, 수입은 그대로고 기름값은 나날이 오르니 장거리 일감을 받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푸념했다.

농가에도 유가 상승 여파가 번지고 있다. 충남 부여군에 따르면 비닐하우스 난방용 등유 가격은 L당 1100원대에서 지난 9일 2156원까지 올랐다. 일부 농가에서는 난방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닐하우스 온도를 3~5도 낮추거나 난방 가동 시간을 1~2시간 줄이며 재배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 유가가 통상 2주 시차를 두고 국내 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름값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국제 유가가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김영리/김다빈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