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속 가능한 돌봄, '대체'가 아닌 '공존'

입력 2026-03-10 17:31
수정 2026-03-11 00:09
2025년, 한국은 공식적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시대다. 고령 인구는 올해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으며 2050년에는 전체의 4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응해 정부는 오는 3월 27일부터 전국에서 ‘지역사회 통합 돌봄’을 시행한다. 노인과 장애인이 병원이나 시설이 아니라 평생 살던 집에서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다.

재가(在家) 서비스 수요가 압도적이고 가족의 돌봄 부담이 임계점에 다다른 현실을 고려할 때 이 정책적 방향은 옳다.

보건복지부의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의 87.2%가 희망 거주 형태로 ‘현재 집에서 계속 산다’를 선택했다. 심지어 건강이 악화해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절반에 가까운 48.9%는 여전히 자택 거주를 원했다. 요양시설에 대한 거부감 역시 뚜렷해 돌봄과미래 재단 조사에서는 시설 입소를 원치 않는 비율이 58%에 달했다.

그러나 정부 역할 확대에는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정책적 함정이 숨어 있다. 첫째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구축효과’다. 재가 돌봄 영역에서 가족 간 비공식 돌봄은 여전히 중요한 근간을 이룬다. 이때 정교한 설계 없는 공식 돌봄 확대는 가족의 자발적 돌봄을 위축시켜 국가 재정만 폭발적으로 키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가족 돌봄을 무조건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재택 의료와 응급 돌봄을 강화해 가족의 간병 부담을 덜어주는 ‘보완자’가 돼야 한다. 보조금과 관련해서도 돌봄 수당이나 유연근무 보장 등 가족의 돌봄 유인이 저해되지 않도록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

둘째는 영유아 돌봄으로의 ‘전이효과’와 세대 간 연대의 약화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가 강조했듯, 가족 내 돌봄은 일종의 ‘시차를 둔 호혜적 교환’이다. 조부모가 기꺼이 손주를 돌보고, 훗날 조부모의 건강이 나빠지면 자녀가 그 은혜를 갚는 구조가 세대 간 돌봄의 근간이다.

만약 국가가 노인 돌봄을 전면적으로 공급해 이 고리를 끊어버리면 조부모가 육아에 참여할 유인이 줄어들고 그 빈자리는 고스란히 성인 여성의 독박 육아와 경력 단절로 전이된다. 좋은 의도의 정책이 예상치 못한 사회적 역풍을 일으키는 전형적인 사례다. 이에 영국은 ‘케어러 크레디트’ 제도를 통해 영유아 돌봄에 참여한 조부모의 연금 가입 기간을 인정해 줌으로써 세대 간 연대를 유지하고 고령층의 후생을 강화하고 있다.

가족 돌봄이 불가능한 사각지대에 놓인 가정을 위해 국가의 역할은 분명 중요하다. 하지만 가족의 역할을 국가가 모두 가져가려고 한다면 재정은 머지않아 파탄에 직면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돌봄 정책이 되려면 기존 가족 공동체를 유지하면서도 부족한 곳을 채워주는 ‘조력자’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가 근거리에서 살도록 유도하는 싱가포르의 ‘근접 주거 보조금’,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복합 커뮤니티인 ‘캄풍 애드미럴티’ 모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통합 돌봄의 핵심은 노인이 원하는 곳에서,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 정부가 서비스를 확대할수록 가족 간 자연스러운 돌봄 교환이 약해질 수 있다는 역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가족의 사랑은 공짜가 아니다. 그 숭고한 가치가 퇴색하지 않도록 사회가 비용을 인정하고 지혜롭게 나눠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