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법무부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불가항력(Force Majeure)' 적용 기준과 대응 방안을 담은 안내서를 마련한다. 자체 법무팀이 없거나 로펌 선임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중소기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우리 기업의 불가항력 대응 전략'이라는 안내 자료를 제작해 조만간 배포할 예정이다. 불가항력은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계약상 의무 이행을 면제하는 조항을 말한다. 크로스보더(국경 간) 거래에서는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조항이기도 하다.
최근 이란과 미국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불가항력 선언도 잇따르고 있다. 세계 2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국인 카타르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생산 시설이 타격을 입자 LNG 공급에 대해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쿠웨이트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조선 이동이 불가능해지자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법무부는 국제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불가항력 적용 요건과 대응 방안을 안내서에 정리했다. 중동 지역 에너지 공급과 해상 운송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관련 계약을 맺은 국내 기업도 불가항력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릴 수 있어서다. 불가항력 상황으로는 선박 운항 중단·지연, 선박 안전 문제로 인한 운송 계약 해지, 특정 항만 폐쇄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기업이 불가항력 해당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체크리스트도 담겼다. 불가항력 선언이 계약서상 통지 기한이나 방법을 준수했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체크리스트에는 계약의 불가항력 조항에 전쟁이나 해상 봉쇄 등이 포함되는지, 불가항력 통지 방식과 기한·절차·증빙 요건 등이 규정돼 있는지 등을 점검하도록 했다. 관련 조항이 없다면 준거법상 불가항력 인정 여부도 살펴봐야 한다.
수입·수출업체별 유의 사항도 안내서에 담겼다. 수입업체는 상대방이 단순한 비용 문제를 이유로 계약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대체 이행 수단이 있는지도 확인한 뒤 필요할 경우 서신 등을 통해 수출업체의 주장에 반박해야 한다. 수출업체는 불가항력을 적법한 방식으로 통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계약상 의무도 이행해야 한다.
이번 자료 발간은 불가항력 선언이 국내 중소기업에도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추진됐다. 강력한 자체 법무팀을 두거나 외부 로펌 선임이 비교적 수월한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법무 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 특히 불가항력은 실제 발동 사례가 많지 않고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준거법 분석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 대응 난도가 높다.
법무부는 기존에도 '해외진출기업 국제법무지원단'을 통해 중소기업 대상 해외 법률 지원을 제공해 왔다. 국내외 변호사 자격을 보유한 주요 대형 로펌 변호사와 국제통상 분야 교수 등 약 200명이 지원단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중동 상황과 관련한 별도 문의는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관계자는 "중소·중견기업의 문의가 접수될 경우 충실한 답변을 통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과 거래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