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연기'에 흡연 중독…가향담배, 한국시장 절반 삼켰다

입력 2026-03-10 16:00
수정 2026-03-10 16:01

국내 담배 시장에서 과일향과 멘톨 등 특정한 맛과 향을 첨가한 ‘가향 담배’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특히 가향 담배 사용률이 청소년층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면서 흡연 진입 장벽을 낮추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담배 시장 절반이 ‘가향’2024년 대한금연학회에서 수행한 ‘담배제품 국내 유통시장 조사 및 흡연행태 심층 분석 연구’에 따르면 국내 가향 담배 판매 비중은 2019년 35.1%에서 2023년 46.7%로 크게 늘었다. 판매량 기준으로는 2019년 12억갑에서 2023년 16억8000만갑으로 급증했다. 2024년 6월 기준으로는 비중이 48%까지 치솟으며 전체 담배 시장의 절반 수준에 육박했다.

종류별로 살펴보면 액상형 전자담배 시장은 대부분이 가향 제품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액상형 전자담배 267개 제품을 조사했더니 99.3%(265개)가 가향 제품으로 확인됐다. 시장 점유율 상위 44개 제품은 모두 가향 제품이었다. 특히 액상형 전자담배의 89.5%는 포장 색상 등을 활용해 향을 적극적으로 암시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 현장에서도 제품명이나 포장지에 과일 그림, 색상 등을 사용해 향을 암시하는 마케팅이 활발하다. 국내 담배 소매점에서 판매되는 제품의 76.9%가 이런 ‘가향 암시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궐련형 전자담배는 95.3%, 일반 궐련 제품은 68.9%에서 이런 요소가 확인됐다.◇청소년 85%가 가향 담배 사용 가향 담배는 설탕·감미료(포도당, 벌꿀 등), 멘톨, 바닐린, 생강 등을 첨가해 담배 향 대신 특정한 맛이나 향이 나도록 하고 목 넘김을 부드럽게 한다. 이런 가향 물질은 담뱃잎이나 궐련지에 직접 도포하거나 니코틴 용액에 첨가하는데 연기를 더 깊게 흡입하도록 유도해 초기 사용을 쉽게 하고 중독성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13~18세 청소년 흡연자의 85.0%가 가향 담배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19~24세(80.1%)와 25~39세(74.5%)보다 높은 수치다. 연령대가 낮을수록 가향 제품 사용률이 높았다. 고등학교 2학년 흡연 경험자 중 77.3%는 가향 제품을 통해 처음 흡연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최초 경험 비율이 86.3%에 달했다.

가향 담배를 선택한 이유로는 ‘맛이 좋아서(44.2%)’, ‘향이 마음에 들어서’, ‘호기심’ 등이 꼽혔다. 성인은 ‘담배 냄새를 줄여준다’는 것도 가향 담배를 선택하는 주 요인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연구 결과 가향 담배 사용자는 비가향 제품 사용자보다 니코틴 의존 점수가 높고 금연 성공률은 낮았다. 멘톨 담배 사용자는 비멘톨 사용자보다 흡연 지속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글로벌 트렌드는 ‘가향 규제’ 해외 주요국은 강력한 가향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캐나다는 2018년, 영국은 2021년부터 멘톨을 포함한 모든 가향 성분의 판매를 전면 금지했다. 유럽연합(EU)도 2020년부터 모든 궐련 담배에서 멘톨 포함 가향을 금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도 담배의 맛을 향상시키는 성분 사용을 제한하도록 권고한다. 협약은 담배 제품의 맛을 향상시키는 성분 사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이 이런 분위기에 맞춰 가향 성분을 전면 금지하는 추세다.

가향 제품 사용은 갈망과 애착, 내성 등 니코틴 의존을 구성하는 세부 요소들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향 담배 사용자의 경우 비가향 제품 사용자보다 니코틴 의존 점수가 통계적으로 높게 측정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 가향 제품으로 흡연을 시작한 이들은 비가향 제품으로 시작한 경우보다 향후 담배 사용을 지속할 위험이 더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성인 흡연자들 사이에서는 가향 담배가 일반 제품보다 건강에 덜 해로울 것이라는 유해성 오인 현상이 존재해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런 실태를 종합할 때 가향 규제는 단순한 기호 제한을 넘어 실질적인 흡연율 감소를 이끄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가향 담배 제도 개선 필요국내에선 가향 물질 표시만 제한하고 있다. 모든 제품군에 가향 물질을 첨가할 수 있다. 가향 담배의 제조·수입·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은 국회 계류 중이다. 서울대 산학협력단 분석에 따르면 가향 담배 규제를 시행하면 남성 흡연율은 지난해 26.2%에서 올해 23.4%로, 여성은 4.1%에서 3.4%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2034년 기준으로는 남성 18.3%, 여성 2.7% 수준까지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규제의 잠재적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가향 담배는 사용자에서 다중 제품 사용률은 높게, 금연 성공률은 낮게 나타날 뿐 아니라 청소년의 담배 제품 사용 진입을 유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현재 우리나라는 모든 담배 제품군에 가향 물질 첨가가 가능하고 제품 포장이나 광고에서 가향 물질 표시만 제한하고 있는 만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림 기자 you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