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대국 일본이 변했다…MZ가 만든 '토토노우' 열풍 [김현주의 재팬코드]

입력 2026-03-13 10:01
수정 2026-03-13 12:09

일본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온천이 떠오른다. 특히 눈 내리는 겨울 풍경 속 노천탕은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전국 3000여개의 온천지와 2만7000개 이상의 원천지를 보유한 온천 대국. 세계 활화산의 약 7%가 집중된 화산대 위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지하로 스며든 물이 마그마의 열로 데워져 솟아오른다. 자연이 만든 치유 인프라다.

약 1300년 전 기록에도 온천은 등장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일정 기간 머무는 ‘유지(湯治)’ 문화는 황족과 승려를 거쳐 전국으로 확산했고, 에도 시대에는 사교와 교류의 공간으로 기능했다. 온천은 공동체적 회복의 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일본의 목욕 문화는 변하고 있다. 교외의 대형 온천 리조트와 도심의 센토(?湯)에서, 보다 개인화된 핀란드식 사우나 공간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중이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 가져온 사우나 변곡점변화의 시작점은 1964년 도쿄올림픽이었다. 핀란드 선수단을 위해 선수촌에 도입된 사우나는 일본에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고도 경제성장기와 맞물리며 1차 사우나 붐이 일었고, 이후 대중목욕탕과 스파 시설에 고온 건식 사우나가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재의 흐름은 과거와 결이 다르다. 2010년대 후반 확산된 ‘토토노우(ととのう)’ 개념이 전환점이었다. 토토노우는 ‘정돈되다’라는 뜻으로, 사우나 → 냉수욕 → 휴식의 루틴을 반복하며 최적의 심신 상태에 도달하는 경험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이는 단순한 땀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자율신경을 조율하는 행위로 이해된다.

고온 환경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냉수욕은 혈관을 급격히 수축시킨다. 이후 휴식 단계에서 부교감신경이 작동하며 깊은 이완이 찾아온다. 이 교차 자극은 혈류 개선과 정신적 선명도를 높이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도 보고되고 있다. 사우나는 ‘열의 스포츠’가 아니라 ‘신경계의 리셋’에 가깝다.


전통적인 일본식 사우나는 80~100℃의 고온·저습 환경이 일반적이다. 짧고 강렬한 체험에 가깝다. 반면 핀란드식은 60~80℃의 저온·다습이 특징이다. 핵심은 ‘뢰일리(loyly)’다. 뜨겁게 달군 돌 위에 물을 부어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천천히 온도를 올려 체감 온도를 부드럽게 끌어올린다. 숨이 막히는 열기가 아니라, 감싸는 듯한 열이다.

흥미로운 점은 문화적 맥락이다. 핀란드에서 사우나는 가족과 친구가 대화를 나누는 공간이지만, 일본에서는 코로나 이후 ‘묵욕’(조용히 씻는 행위) 문화가 강조되며 오히려 고요함이 강화됐다. 일본은 핀란드식 방식을 도입하면서도, 이를 보다 개인적인 명상적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MZ세대가 만드는 사우나 팬덤 문화일본의 사우나 열풍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문화를 이끄는 주역이 20대부터 40대 초반의 MZ세대라는 것이다. 가족 단위로 즐기던 전통 온천 문화와 달리, 새로운 사우나 문화는 개인의 웰니스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가 단순 이용자를 넘어 트렌드 세터이자 문화 생산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셜 사우나 플랫폼 '사우나 이키타이(サウナイキタイ)'에는 자칭 사우나 마니아들이 모여 '사카츠(サ活·사우나 활동)'를 공유한다. 시설 리뷰, 토토노우 경험담, 추천 루틴까지 세세하게 기록하며 사우나 문화의 데이터베이스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2018년부터 시작된 '사우나슐랭'은 매년 11월 11일을 '토토노에의 날(ととのえの日)'로 지정하여 전국에서 지금 가야 할 사우나 시설을 미슐랭 가이드처럼 선정·발표한다. 사우나는 이제 평가되고, 기록되고, 순위가 매겨지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열광하는 일본의 사우나는 어떨까.


도쿄 시부야에 위치한 사우나스(SAUNAS)는 사우나를 일본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상징이다. 북유럽 감성을 반영한 건축 설계, 자연 채광을 활용한 공간 구성, 그리고 여러 종류의 사우나실을 갖춘 복합 구조가 특징이다. 단순한 목욕 시설이 아니라, 디자인과 감성을 소비하는 공간이다.

특히 만화와 에세이 <사도(サ道)의 저자이며, 일본 사우나·스파 협회에서 사우나 대사를 맡은 타나카 카츠키가 디렉팅을 한 사우나다. 취향을 집중시킨 9개의 사우나실, 깊은 욕탕, 그리고 미슐랭 셰프가 참여한 플랜트 베이스 푸드, 워킹 스페이스, 회의실도 완비한 종합 토토노이(토토노우의 명사형) 공간이다.<br />

독일 사우나에서 넘어온 ‘아우프구스(Aufguss)’라는 퍼포먼스를 이벤트로 진행하기도 한다. 아우프구스 마스터가 뢰일리에서 발생한 증기를 타월로 부채질하는 예술적 퍼포먼스로 열을 고르게 분산시켜 사우나실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균등하고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아우프구스 마스터의 예술적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사우나스에서 경험하는 특별함이다.


리뉴얼 오픈을 마쳐 1인에서 3인까지 이용할 수 있게 변화된 솔로사우나 튠. 예약제로 운영되며, 지금까지 4만6000회 이상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간 일본의 대표적 프라이빗 사우나다. 블루톤 인테리어와 차분한 조명 아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성우 호소야 요시마사의 솔로 사우나를 즐기기 위한 음성 가이드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로 사우나의 경험적 측면에 집중하고 있다. 야쿠시마에서 녹음한 자연음에 3D 사운드를 넣고 일본 사우나 학회 카토 요시타카의 감수를 진행, 사우나 이용 타임라인에 맞추어 재생하는 섬세한 설계가 돋보인다..


반면 커뮤니티 활동에 집중하는 사우나로는 몬스터 워크 앤 사우나(MONSTER WORK & SAUNA)가 있다. 100명이 모여서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초대형 사우나 시설을 갖추고, 공유 오피스의 공간을 함께 두고 있어 활발한 사람들을 타켓으로 풍부한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작년 여름 진격의 거인과 콜라보를 통해 몬스터라는 자신들의 사우나 콘셉트를 더 명확히 하였다. 강한자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콘셉트로 하드한 면모를 강조하여 사우나 열기와 넓은 사우나 공간의 계단별 온도 차를 모티브로 진격의 거인을 단계로 풀어내며 사우나 마니아들의 열정을 표현했다.


이렇듯 사우나는 이제 라이프스타일이자 정체성 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사우나 전용 타월, 사우나 햇, 뢰일리용 아로마 오일, 전용 샌들, 사우나 전용 웨어까지 다양한 굿즈가 출시되며 팬 마케팅이 활성화되고 있다. '사우나 타비(サウナ旅, 사우나 여행)'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사우나 시설이 뛰어난 스테이와 호텔을 찾아 여행하는 문화도 확산됐다.

다양한 사우나가 생겨 각자의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집에 베란다형·텐트형 개인 사우나를 설치하는 것도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는 단순한 소비를 넘어 사우나 문화를 통해 본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어가는 중이다. 한국으로 건너온 사우나 웰니스이런 흐름이 한국에도 상륙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웰니스 키워드와 함께 사우나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프라이빗 사우나 브랜드가 새로 생겼고, 기존 찜질방·스파와는 차별화된 프리미엄 사우나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한국 사우나 역시 커뮤니티 중심의 소셜 사우나가, 다른 한편에서는 나만의 시간에 집중하는 프라이빗 사우나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시설 변화라기보다 휴식 방식의 재구성을 보여준다.

일본이 온천에서 사우나로 이동했다면 한국은 대형 찜질방 중심 구조에서 개인 리추얼 중심 구조로 이동하는 단계에 있다. 사우나는 더 이상 단순한 목욕 시설이 아니다. 디지털 피로, 1인 가구 증가, 경험 소비 확산이라는 사회적 변화와 맞물리며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카테고리로 자리 잡고 있다. 토토노우라는 표현은 유행어를 넘어, 현대인이 선택하는 새로운 웰니스 문법을 설명하는 단어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