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g '모태비만'도 뛴다…인류사에 새겨진 러닝 본능 [나연만의 달려도 달려도]

입력 2026-03-18 10:18
수정 2026-03-18 10:49

몇 년 전부터 늘어난 러닝 인구가 이제는 천만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혹자는 코로나19 이후 폭증했다가 썰물처럼 빠진 사이클, 골프 열풍처럼 러닝 역시 금세 시들해질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월대보름에 불붙은 깡통이 떨어진 마른 논두렁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러닝의 열기는 몇 년이 흐른 지금도 도무지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러닝 인구 천만’이라는 수치는 일상에서 고스란히 체감된다. 밤이든 낮이든 도심이나 하천 변, 심지어 산속에서도 달리는 사람들을 흔히 마주칠 수 있다.

마라톤 대회 참가권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다. 대회 접수 사이트가 열린 지 몇 분 만에 참가권이 매진되거나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마라톤대회 출전권을 얻기 위해 서포터스에 가입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가의 신발이 포함된 패키지상품을 구매해야 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뛰고는 싶지만 두려운 당신에게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러닝을 하는 가족이나 지인을 보며 문득 ‘나도 한 번 달려볼까?’하는 호기심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호기심 이면에 러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두려워하고 주저하는 마음을 가진 이도 적지 않다. 고도비만이라 무릎이 상할까 봐, 이미 중년을 넘은 나이라서, 목과 허리에 디스크를 앓고 있어서, 운동 신경이 없어서, 운동하는 폼 때문에 놀림을 받아서 등등.

그러나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달리기는 ‘가능’하다. 모두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의 유년 시절 운동 역사는 ‘모태 비만’이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체지방량에 어울리는 ‘배사장’이라는 별명을 굴레처럼 지고 살았다. 중학교 체육 시간에 3km 달리기를 처음 해 보고 며칠을 앓았다. 당시의 트라우마는 꽤 오래 지속됐다. 오래달리기가 얼마나 끔찍하게 싫었던지, 체력장(지금의 ‘학생건강체력평가’에 해당) 하는 날 결석을 해버릴 정도였다.

운동 신경마저 지독히 없었던 나는 마음먹고 운동을 시작할 때마다 어딘가 부러지거나 망가졌다. 팔, 다리, 발목이 부러졌고 목과 허리의 추간판들은 더 이상 못 견디겠다며 탈출했으며, 종국에는 체중을 이기지 못한 무릎연골이 찢어져 수술대에 오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운동을 외면한 채 긴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순전한 호기심에 지원했던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덜컥 당첨되고 말았다. (정말 안 될 줄 알았다) 당시 체중은 100kg을 훌쩍 넘긴 상태였고, 자주 가던 내과 원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고지혈증 약이나 잘 챙겨 먹으라"며 혀를 차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점차 탄력이 붙더니, 6개월 만에 당시 신청했던 대회에 나가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수 있었다.

자전거는 200년, 달리기는 30만 년어째서 그럴까. 운동을 못하든 싫어하든 부정적인 생각 따위는 당신 안에 내재된 ‘러너의 본능’을 없애지 못한다. 영화 <매트릭스> 속 네오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계를 구원할 능력을 갖추고 태어난 것처럼 당신은 달리기를 할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DNA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러닝은 자전거 타기나 골프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역사의 길’이다. 인류가 두 바퀴에 의지해 자전거 페달을 밟기 시작한 지는 고작 2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초원에서 쇠막대기를 휘두르며 작은 공을 때려 홀에 넣는 놀이를 한 지는 기껏해야 100년 안팎의 일이다. 반면, 인간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달리기 시작한 지는 30만 년이 넘는다. 즉, 러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다.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의 다니엘 리버만(Daniel Lieberman) 교수 등 진화 연구자들은 인체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오래 달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체모가 적어 달릴 때 발생하는 열을 쉽게 배출할 수 있고, 상체가 앞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대둔근이 발달했으며, 효율과 내구성이 좋은 아킬레스건을 갖고 있는 점 등이 그렇다.

덕분에 현대인은 40km가 넘는 엄청난 거리를 달릴 수 있으며, 이는 다른 영장류에게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다. 560km를 80시간 넘게 쉬지 않고 달린 딘 카나제스(Dean Karnazes)의 기록도 있다. 이처럼 끈질기게 달릴 수 있는 인간은 사냥감 입장에서는 정말 <나이트메어> 속의 프레디 급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인류는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없이도 사냥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이것이 기나긴 세월 우리가 살아남은 생존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달릴 수 있다자전거의 균형을 잡는 능력이나 골프 스윙의 궤도를 멋지게 유지하면서 공을 때릴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나지 않았다. 그것들은 철저히 ‘학습의 영역’이다. 하지만 ‘달리는 법’은 유전자 깊숙한 곳에 각인돼 있다. 달리기는 인류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기에 발전 속도 역시 놀랍도록 빠르다.

그러니 혹시라도 당신의 빈약한 체력, 불어난 체중, 혹은 나이와 과거의 상처로 달리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다만, 현재 치료를 받는 중이거나 달릴 때 통증이 있는 사람이 무작정 뛰다가 또 다른 부상이나 트라우마를 입는 경우는 경계해야 한다) 종종걸음으로나마 조금씩 달릴 수 있을 정도의 건강만 허락된다면, 과감히 문밖으로 나가 뛰어보길 권한다. 백 미터도 좋고, 일 킬로미터도 좋다.

당신의 나약한 신체 속에서도 30만 년을 면면히 이어온 위대한 장거리 러너의 본능은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그저 운동화 끈을 묶고 문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원래 달리기 위해 태어났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