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2500원' 커지는 공포…"한국도 사정권" 경고 쏟아졌다

입력 2026-03-08 17:47
수정 2026-03-09 07:05

미국과 이란 전쟁에 따른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파로 중동 국가들이 잇달아 원유 생산 감축에 나서고 있다. 공급 감소가 본격화하며 국제 유가는 단숨에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 고공행진하는 유가가 물가 상승과 소비 위축을 동시에 촉발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석유공사는 성명을 통해 “저장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원유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UAE는 세계 3위 원유 생산국으로 하루 350만 배럴 이상을 생산해 왔다. 세계 5위 산유국인 쿠웨이트 역시 “유전과 정유공장에서 모두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10만 배럴을 감산했으며 8일부터는 감산 규모를 30만 배럴로 늘렸다.

앞서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은 이라크도 원유 생산량을 줄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최대 정유 공장을, 카타르는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터미널을 폐쇄했다.

에너지 공급 감소는 주간 단위 역대 최대 오름폭을 기록한 유가 상승을 부채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지난 6일 2년 만의 최고치인 배럴당 93달러까지 치솟았다. 주간 상승률은 35.63%에 달해 집계를 시작한 1983년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같은 날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5월 인도분 기준) 가격은 8.52% 급등한 배럴당 92.69달러에 마감했다. 2022년 3월 이후 최대 상승폭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 고용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냉각되자 스태그플레이션 진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6일 발표된 미국의 2월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9만2000개 감소해 5만 개 증가를 예상한 시장 추정치를 크게 밑돌았다. 스테파니 로스 울프리서치 전략가는 “유가가 20달러 상승할 때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1% 하락하고 물가는 0.4% 오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도 스태그플레이션 사정권에 들어갔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L당 1895.34원을 기록해 지난달 28일 대비 11.9% 올랐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국내 휘발유 가격이 L당 3000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환율 급등땐 '휘발유 2500원' 넘을 수도…금리, 인상도 인하도 못해
유가 상승에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걸프 지역 국가들이 원유 생산량을 잇달아 줄이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유조선 운항을 차단하자 원유를 생산해도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사드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은 “걸프 지역 모든 수출국이 조만간 불가항력을 선언하게 될 것”이라며 “몇 주 안에 유가가 150달러 수준으로 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가 폭등이 기정사실화하면서 경기 위축과 물가 급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고용 위축에도 금리 인하 못 해공포에 처음 불을 붙인 건 미국이다. 미국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BLS)은 지난달 비농업 부문 고용이 전달보다 9만2000명 줄었다고 지난 6일 발표했다. 전망치(5만 명 증가)를 크게 밑돌았다. 지난달 발발한 전쟁 효과가 거의 반영되지 않았음에도 고용시장이 예상보다 일찍 위축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란발(發) 유가 급등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JP모간체이스는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미국 물가 상승률은 0.1%포인트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도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유가 상승이 중국 내 에너지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경제 성장은 정체되고 물가를 끌어올려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1970년대 오일쇼크 반복되나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높고 외환시장이 불안한 한국은 미국 중국 등과 비교해 이란 사태에 더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 유가가 150~200달러까지 오르고 전쟁 장기화로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해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 휘발유값이 L당 2500원에서 3000원 수준에 육박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오피넷에 따르면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8일 L당 1895원으로 올랐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전쟁 전 배럴당 60달러 수준이던 국제 유가가 이미 90달러를 넘어섰고, 하루 15만달러 수준이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용선료가 세 배 넘게 치솟았다”며 “이것만으로 국내 유가는 500원가량 상승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전 세계 원유의 3%에 수급 문제가 생겼는데 유가가 50% 상승했고, 오일쇼크 당시엔 약 10%가 타격받았는데 두 배 올랐다”며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세계 원유는 약 20%에 달해 사태가 지속된다면 전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러·우 전쟁 초기인 2022년 6월 두바이유 가격이 120달러로 치솟자 국내 휘발유 가격은 2144.9원까지 올랐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연 2.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6개월 뒤에도 현재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2% 경제성장률이 전망되는 만큼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할 필요가 없어졌고, 반도체 분야만 호황인 K자형 회복이어서 금리를 인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11~12월 0.7~1.0% 증가세를 나타낸 전산업생산은 1월 1.3% 감소했다. 건설투자(건설기성)도 1월 11.3% 급감했다.

문제는 이란 전쟁으로 상황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유가 급등으로 물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진 동시에 경기 위축 우려도 커졌다. 여기에 외환시장과 주택시장도 여전히 불안해 한은이 금리를 낮출 수도, 높일 수도 없는 딜레마적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오일쇼크 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여파로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배럴당 3달러이던 유가가 12달러로 급등했다. 이듬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3%를 기록했고, 경제성장률은 7.7%로 전년(14.9%)에 비해 반 토막 났다.

안상미/워싱턴=이상은 특파원/정영효/김대훈 기자 sar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