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엔 엔고' 옛말

입력 2026-03-08 18:20
수정 2026-03-09 00:40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뒤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일본 엔화값이 떨어지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관투자가가 기축통화인 달러를 확보하려고 움직이는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 정부가 돈을 더 풀 것이라는 전망이 더해진 결과다. ‘위기 시에는 엔화 매수세 증가’라는 과거 공식이 깨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한때 달러당 158엔대까지 상승(엔화 가치는 하락)했다. 1월 중순 이후 한 달여 만의 최고치다. 지난달 중순 달러당 152~153엔대까지 떨어진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미국의 이란 공격 이후 상승세다.

비교 통화인 달러 가격이 오르는 것이 1차 원인이다. 주식과 원유, 금 가격이 요동치는 가운데 달러를 확보해 리스크를 줄이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엔과 유로 등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는 지난달 27일 97에서 이달 6일 99로 뛰었다.

전쟁 이후 원유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는 점도 엔저의 배경 중 하나다. 유가 상승은 식품 등 물가를 높여 경기 침체 요인으로 작용한다. 시장에서는 다카이치 정부가 고물가 대책으로 재정 지출을 늘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일본의 높은 해외 에너지 의존도 역시 엔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본은 수입 원유의 95%를 중동에서 들여온다. 반면 캐나다처럼 자체 에너지 자원 생산량이 수입량보다 많은 자원국은 통화 가치가 비교적 덜 하락했다.

과거에는 세계 경제에 돌발 변수가 발생했을 때 엔화가 강세를 띠었다.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평가받은 데다 해외 자산을 많이 보유한 일본 기업이 현지 통화를 엔화로 바꾸려는 수요도 많았기 때문이다.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