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담합을 중대 범죄로 규정하고 연일 엄중 대응 방침을 밝히면서 담합 규제를 전담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이 운을 띄우면 공정위가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모습을 연출하면서다. 특히 설탕, 밀가루, 교복, 대출 금리, 유류 등 생활 물가와 직결된 분야에서 잇따라 담합 조사에 나서거나 조사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공정위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의 최전선에 선 모양새다. ◇“고유가 주유소 담합 여부 조사”
이 대통령은 6일 X(옛 트위터)에 유류값 인상과 관련한 언론 기사를 공유하며 “담합 가격조작은 대국민 중대 범죄”라고 썼다. 그러면서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날 국무회의에서 가파른 유류값 인상에 대해 “어려운 시장 환경을 악용해 불합리한 폭리를 취하려는 행위”라고 비판한 데 이어 연이틀 정유업계와 주유소들을 겨냥한 것이다.
공정위는 이날 ‘불공정거래 점검팀’ 회의를 열어 블랙리스트에 오른 ‘고유가 주유소’의 담합 정황이 확인되면 지방사무소를 총동원해 현장 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공정위, 산업통상부, 석유관리원, 국세청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석유시장 점검반을 가동해 전국 주유소를 대상으로 월 2000회 수준의 고강도 검사에 들어갔다.
다만 공정위는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 조사는 아직 언급하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국제 유가에 환율과 일정 마진을 가산해 공급 가격을 정한 뒤 매일 산업부에 공지하는 구조상 정유업계의 담합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전분당 7년간 6조원 짬짜미 적발공정위는 지난해 말부터 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설탕, 계란, 밀가루, 전분당 등 물가에 영향을 주는 식품 소재 시장의 담합을 점검하고 있다. 6일에는 대상, 사조CPK, 삼양사, CJ제일제당 등 전분당 4개사의 담합 혐의에 관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전분당이란 옥수수를 분쇄해 만든 전분(분말 형태)과 전분을 분해해 생산한 당류(물엿, 포도당, 액상과당)로 가공식품의 주원료다.
전분당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의 90%를 과점한 4사는 2018년부터 7년6개월간 판매가를 짬짜미한 혐의를 받는다. 공정위는 관련 매출을 6조2000억원으로 추정하고 법정 상한인 20%(1조20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전원위원회에 건의했다. 담합 이전 수준으로 가격을 낮추도록 강제하는 ‘가격 재결정 명령’도 제재 방안에 포함시켰다. 지난달 발표한 밀가루 담합 사건에 이어 두 번째다.
공정위는 식품 소재 담합 조사가 마무리되면 실제 소비자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도록 라면 과자 빵 아이스크림 등의 출고가 및 소비자가격을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재계에선 공정위 사정 정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는 국제 가격, 환율 등 거시 변수가 더 큰 영향을 끼친다”며 “물가 안정이 공정위의 정책 목표가 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노동, 주식시장, 부동산 등 이 대통령이 아젠다를 제시하면 관련 부처가 따라가는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무원들의 적극 행정을 유도하는 측면도 있지만, 자체적인 아젠다 세팅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부처 공무원들이 청와대에서 시키는 것만 숙제하듯 하고 있다”며 “당장은 해당 부처에 힘이 실리는 것 같지만,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문제를 파악해 해결해 나가는 분위기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훈/하지은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