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NCC가 고객사에 나프타 조달 차질을 이유로 제품 공급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한 것은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핵심 원료 공급망을 흔들기 시작한 첫 번째 사례로 평가된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는 중동산 의존도가 높은 데다 국내 생산분도 수입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구조여서 공급망 충격이 석유화학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나프타 재고 2주”…석유화학 수급 비상
6일 석유화학업계와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국내 석유화학 기업이 보유한 나프타 재고는 약 2주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나프타는 플라스틱, 합성수지, 합성섬유 등을 생산하는 기초 원료로 공급이 흔들리면 화학제품 생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원유를 정제하면 20~30%는 나프타로 생산되기 때문에 안정적인 원유 수입은 공급으로 직결된다. 하지만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원유와 나프타 수송이 동시에 차질을 빚어 공급망 불안이 커지고 있다.
국내 시장에 공급되는 나프타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해 직접 생산하는 물량이 50~60%, 수입하는 물량이 40~50%다. 수입 나프타 가운데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비중은 51%다. 국가별로는 아랍에미리트(UAE) 24%, 카타르 13%, 쿠웨이트 9%, 바레인 3%, 사우디아라비아 2% 순이다.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오만산(7%)까지 합치면 중동산 비중은 58%에 이른다.
수입이 막혀도 단기적으로는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로 나프타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원료인 원유 또한 대부분 중동산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원유와 나프타 수입이 동시에 차질을 빚어 이르면 이달 말부터 나프타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대체 수입처 확보와 대체 원료 활용을 기업들과 협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산업계 부담공급 중단을 통보한 여천NCC뿐 아니라 다른 나프타분해시설(NCC) 업체의 생산 감축도 시간문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미 몇몇 기업이 산업부와 감산 수준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급등하면서 NCC 원가 부담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나프타 가격은 지난달 27일 t당 590달러에서 이달 3일 t당 737달러로 약 25% 상승했다.
업계에서는 현재 80% 수준인 NCC 평균 가동률이 60~70%까지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NCC 업체로부터 기초유분을 공급받아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경영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원료 공급 불안에 에너지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산업 전반의 비용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 정보업체 아르구스미디어에 따르면 북서유럽 항공유 가격은 지난 5일 기준 t당 1416달러로 하루 만에 12% 상승했다. 2022년 6월 이후 약 4년 만의 최고치다. 브렌트유 대비 항공유 프리미엄도 배럴당 97달러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프리미엄이 배럴당 80달러까지 치솟았다. 연료비 비중이 높은 항공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스 가격도 크게 올랐다. 군사 충돌 이후 유럽의 가스 가격은 약 53% 상승했다. 발전사가 가스 대신 석탄 발전을 늘리면서 유럽 발전용 석탄 가격도 t당 133달러로 전쟁 직전보다 약 26% 뛰었다.
정부 관계자는 “에너지 가격 상승은 항공,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의 생산 비용을 끌어올린다”며 “나프타 등 원료 수급 불안까지 겹치면 화학제품 가격 상승과 공급 차질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은/성상훈/이혜인 기자 hazz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