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7~2031년 의과대학 정원을 5년간 3342명 늘리고, 졸업 후 10년간 정부가 지정한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는 지역의사제도를 발표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의료 공백이 극심하니 대책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수(數)도 부족하지만 관심도 없다는 두 가지 현실을 함께 봐야 한다. 도시에서조차 방문진료 의사를 찾기 어렵다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의사 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치관과 태도의 문제이고, 정책 이전에 인류학적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최근 의대를 그만둔 20대와 직장을 그만둔 30대를 만났다. 둘의 공통점은 “부모가 원하는 삶을 이제 멈추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다. 입시지옥을 뚫고 의대에 입학한 청년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계속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거나, 중·고교 시절의 고통에서 벗어나 이제는 편한 길을 택하거나. 어느 쪽이든 필수의료과를 향한 소명과는 거리가 멀다.
젊은 의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청년세대 전반의 문제다.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기 어렵다. 한국은 압축 성장 과정에서 유교적 집단주의와 서구식 개인주의가 소화될 틈 없이 충돌했다. 입시라는 단일한 신분 상승의 통로가 그 모순을 가장 극단적으로 압축한 공간이 됐다.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충(忠)은 사라졌지만 효(孝)와 예(禮)는 문화 속에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그들은 할리우드와 조기 영어교육을 통해 부모를 편하게 대하며 자기 삶을 설계하는 방식을 동경한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경제적 독립은 요원하고, 성적을 제외하고는 객관적으로 평가받아본 적 없는 그들은 자신의 한계를 돌아볼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한다. 두 문화 사이에서 표류하는 청년들, 그 역사의 산물이 지금의 의료 현장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가치관의 문제를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인류학적 현실을 반영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 목표는 선한 의지를 지닌 의사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떠나지 않도록 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비합리적 수익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근거가 부족한 의료행위가 근거가 충분한 행위보다 수배 비싼 현실은 상식에 어긋난다. 성분과 효능이 같은 약의 선택권은 환자에게 있어야 한다. 비급여 규제와 리베이트 정상화 없이는, 편한 길을 두고 굳이 힘든 길을 택할 의사는 없다. 공정한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먼저다.
둘째, 시골에서 살겠다는 의지를 가진 의사들의 노후를 보장해줘야 한다. 의사들이 지방 근무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자녀 교육 문제다. 지역의사연금과 지역 내 특성화고 자녀 특례입학 보장이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해외 근무에는 되는 것이 지역 근무에 안 될 이유가 없다. 강제 근무보다 비용도 적게 든다.
근본적인 문제는 부모 세대와 사회문화다. 성리학을 배울 때 충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이 시대의 충은 왕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공동체와 인류 전체에 대한 헌신으로 이해해야 한다. 서양 가치관을 받아들여 자녀의 선택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싶다면, 초등학생을 의대 준비 학원에 보내는 일부터 멈춰야 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한국문화를 만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영혼이 덕에 따라 활동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덕 없이 얻은 자리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내가 만난 많은 젊은 의사들은 행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