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코리아 준대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필랑트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출시 전임에도 이미 사전예약 건수가 7000대를 돌파했다. 필랑트는 르노코리아의 '오로라 프로젝트'로 제작된 전략 모델이다. 프랑스 르노 그룹 기술을 적용했지만 전량 한국 부산 공장에서 생산하는 핵심 모델이다.
지난 5일 경주에서 필랑트를 시승했다. 왕복 2시간40분가량의 코스로 국도, 와인딩, 고속도로를 두루 거쳐 달렸다. 세련된 디자인에 시선이 우선 쏠렸다. 탑승 후에는 고속 저속을 막론하고 보여준 뛰어난 정숙성과 고속 주행 안전성, 와인딩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이 인상적이었다. 독특하지만 절제된 전면...'쿠페' 생각나는 측면필랑트는 디자인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3차원 입체 구조의 일루미네이티드 시그니처 로장주 로고와 그릴 라이팅이 시각적으로 첫눈에 들어왔다. 다른 경쟁 차량에 비해 독특하지만 막 튀지는 않는다.
쿠페를 떠올리게 하는 매끄러운 곡선의 측면 라인이 인상깊었다. 필랑트는 E세그먼트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으로 길이 4915㎜, 전고 1635㎜다. 쏘렌토 4815㎜ 대비 길이는 길지만 전고(1695㎜)는 짧다. 전장 대비 낮은 전고에 더해 측면에서 루프라인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어 역동적인 모습이다.
19인치 또는 20인치의 대형 휠은 시각적으로 단단한 인상을 준다. 후면 디자인은 더욱 강렬하다. 후면 유리에는 와이퍼가 없어 날렵함을 더한다. 디자인은 프랑스 르노 테크노센터와 한국 르노 디자인 센터 서울 간 협력으로 한국에서 개발을 완료했다고 한다.
실내는 정밀한 스티치나 소재 등에서 보이는 깔끔함이 돋보인다. 시트는 '퍼스트 클래스 라운지 시트'로 탑승자를 감싸는 구조로 돼 있어 운전하는 내내 편안했다. 운전석 콘솔에서의 넉넉한 수납 공간도 눈길을 끈다.
특히 뒷좌석 공간감이 돋보였다. 필랑트는 320㎜의 무릎 공간과 886㎜의 헤드룸을 제공한다. 트렁크도 생각보다 넉넉했다. 시트를 접으면 최대 2050L까지 활용 가능하다. 차 천장에 길게 뻗은 1.1㎡의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가 개방감을 더한다. '파노라믹 글라스 루프가 차를 더 덥게 하거나, 춥게 하지는 않는가'란 질문에 르노코리아 측은 "이중 코팅과 솔라 필름을 적용해 뛰어난 열 차단 성능을 갖췄다"며 "오히려 글라스 루프 덕분에 실내 온도가 낮아지는 것을 개발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부연했다.
고속으로 달려도 조용해...조향성도 탁월필랑트를 시승하며 가장 좋았던 점은 고속으로 달려도 조용하다는 것이었다. 고속도로를 빠른 속도로 내달렸지만, 풍절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주행 정숙성을 높이기 위해 모든 트림에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기능을 기본으로 적용했다고 한다. 바닥과 엔진룸에 강화된 흡차음재를 썼으며, 아이코닉 이상의 트림에는 1열과 2열 사이드에 이중접합 차음 유리가 기본으로 적용한다. 시동을 걸 때도 요란하지 않고 조용하다. 고속뿐만 아니라 저속에서도 조용한 주행이 이어졌다.
전기차처럼 밟으면 쭉 나가는 반응성도 탁월하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지체 없이 바로 나간다. 브레이크도 꿀렁거림 없이 바로 반응한다. 필랑트에 장착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의 듀얼 모터 시스템으로 효용성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여기에 하이브리드 전용 멀티모드 오토 기어박스가 더해져 주행 감각이 부드럽다. 전기와 내연, 내연에서 전기로 스위치되는 순간에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핸들링도 수준급이다. 이날 시승 코스에서는 와인딩이 제법 길었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가는데 전장도 제법 긴 차가 조향을 민첩하게 했다. 핸들을 자주, 큰 각도로 꺾어야 하는 굽은 곡선 코너링에서도 마치 땅에 붙어 도는 듯한 단단한 감각이 느껴졌다. 2열에 앉아서 돌아오는 길에서는 안락한 승차감을 줬다. 르노코리아는 안락한 승차감을 위해 다양한 주파수의 진동을 감지해 감쇠력을 실시간 조절하는 첨단 서스펜션 기술 '주파수 감응형 댐퍼'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차선 중앙으로 계속 튕겨주는 액티브 드라이브 어시스트안전과 관련해 특히 인상적인 점은 안전벨트였다. 운전석에 앉아 깜빡하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차체는 전체 구조의 18%에 해당하는 24개의 핫 프레스 포밍 부품을 적용해 충돌 안전성을 높였다.
액티브 드라이브 어시스트 덕분에 긴 전장의 차도 마치 소형차를 몰 듯 편안한 운전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 운전하는 내내 시스템이 작동해 차선 중앙으로 계속해서 핸들을 튕겨줬다. 초보 운전자가 큰 차를 몰면 불편할 수 있는데, 이런 부분에서 기술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차 구역을 인지해 스스로 알아서 주차해주는 시스템도 편리했다.
필랑트에는 브랜드 차량 최초로 '긴급 조향 보조 시스템'이 전 트림 기본 제공된다. 시속 60~90㎞ 구간에서 카메라와 센서 데이터를 활용해 주행 차선 내 추돌 위험이 있는 차량이나 보행자가 감지되면 자동으로 안전 회피를 돕는 기능이다. 디지털 룸미러가 있어 후면 시야가 선명하게 보였다.
필랑트에 적용된 인공지능(AI) 기반 음성 어시스턴트 '에이닷 오토'는 인식률이 제법 높아 보였다. '헤이 르노'라고 명령하면 바로바로 알아듣는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해 자연스러운 언어 처리 능력도 갖췄다. 일례로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라면, AI 비서가 먼저 '미세먼지가 나쁜데 창문을 닫을까요?'라고 묻는 식이다.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티맵' 시스템도 별도 휴대폰을 연결할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필랑트는 정통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아니다. 하지만 전고가 높고 덩치가 큰 정통 SUV가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소비자에겐 패밀리카로서 선택지가 될 만해 보였다. 가격도 매력적이다. 기본 트림인 하이브리드 E-테크 테크노의 가격은 4500만원부터 시작하는데, 친환경차 세제 혜택을 받으면 4331만9000원으로 낮아진다.
경주=최수진 한경닷컴 기자 naiv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