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란 제목의 시트리니리서치 보고서는 기업 업무를 돕는 인공지능(AI) 에이전트로 인해 근로자가 일자리와 소득을 잃고, 순차적으로 소비가 붕괴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잠도 자지 않고 일하고, 건강보험료 비용 부담도 없는 AI 에이전트가 널리 쓰이면 일단 겉으론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납니다. AI가 창출한 부(富)는 그러나 소득과 소비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름하여 ‘유령(ghost) GDP’가 되고, 이는 세계경제의 종말적 위기를 몰고 온다고 보고서는 주장합니다. ‘유령 GDP’란 총공급이 총수요보다 많은 ‘공급과잉’ 상황을 말합니다. 이게 과연 정통 경제이론에서 가능한 추론일까요?19세기 공급과잉 논쟁경제학이 학문적 기초를 갖추기 시작한 고전학파 시절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습니다. 이는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명제인데요, 이후 ‘세의 법칙(Say’s Law)’으로 불립니다. 경제주체는 생산을 통해 소득을 얻고 그 소득은 다른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가 되기 때문에 경제 전체로 볼 때 지속적인 공급과잉(General Glut)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역시 19세기 경제학자인 영국의 데이비드 리카도와 토머스 맬서스는 이를 두고 다시 논쟁을 벌였습니다. 리카도는 세의 법칙을 받아들여 “부분적 과잉(특정 산업의 과잉생산)은 있더라도 경제 전체의 일반적 과잉은 없다”고 봤습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산업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 과잉이 나타나더라도 그로 인해 절감된 비용이 다른 분야의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과잉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맬서스는 저축이나 소득분배 구조의 영향으로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 부족 또는 과잉생산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불완전균형을 간파한 케인스이 논쟁에 중요 이정표를 만든 인물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입니다. 그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세의 법칙을 정면 부정합니다. 케인스는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총공급이 총수요를 초과하는 상태가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축과 화폐의 기능도 영향을 미친다고 봤습니다. 가계와 기업이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고 그 저축이 같은 규모의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 총수요는 총공급보다 작아집니다. 화폐는 투자위험이 없는 안전자산이어서 화폐 자체를 보유하려는 욕구도 있습니다. 기업이 생산활동으로 번 돈을 경기 상황에 따라 소비나 투자에 쓰지 않고 현금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그런 예입니다. 총공급과 총수요가 일치하면 경제가 이상적인 균형에 도달한 것인데, 현실에선 공급과잉 등 불완전한 상태에서 균형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겁니다.“AI발 종말론은 허구” 주장도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현대 경제학계의 시각처럼 경제 전체의 공급과잉은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시트리니리서치 보고서의 ‘유령 GDP’는 가능한 얘기입니다. 지금 빅테크들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AI 기술개발 경쟁에 승부를 걸고 있는데요, 이게 실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유령 GDP가 되는 겁니다. 최근 미국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데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반론도 제기됩니다. 시장에선 공급과잉도 우려하지만, 혹여 AI 기업들의 투자자금이 바닥나지는 않을지 주목합니다. AI 투자가 공급과잉을 낳을지, 필요한 투자가 집행되지 않아 관련 기술개발이 더뎌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또한 GDP는 증가하는데 현금을 쌓아만 두고 소비는 붕괴한다면 디플레이션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GDP는 다시 줄어들게 되죠. 이런 관점에선 ‘증가하는 유령 GDP’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이 됩니다.
금리, 채권 매매, 보조금 등 정책 수단을 가진 정부와 중앙은행의 존재도 있습니다. AI가 생산을 주도한다고 해서 소비가 감소하는 경제를 정부가 방치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런 관점에선 AI발 종말론은 과장이고, 이런 논리 전개는 허구라고 봅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NIE 포인트1. ‘세의 법칙’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무엇인가?
2. 고전학파 경제학은 완전경쟁시장을 가정한다. 또 다른 가정이 있다면?
3. 경제는 장기적으로 균형을 찾아간다. 현실에 맞는 설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