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戰에 사용해 놓고도…美, 정부 조달망서 '앤스로픽' 제외

입력 2026-03-06 08:27
수정 2026-03-06 09:04

미국 국방부가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앤스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공식 지정했다. 공급망 위험이란 특정 기업이나 기술이 국가 안보나 군사 작전에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정부 조달망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주로 중국이나 러시아 등 외국 적대국 기업을 대상으로 사용돼 왔으며, 미국 기업이 공개적으로 이 지정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앤스로픽 경영진에게 회사의 제품과 기술을 즉시 공급망 위험 대상으로 지정한다는 사실을 공식 통보했다. 이에 따라 향후 펜타곤과 계약을 맺는 방위산업 업체나 하청 기업들은 국방부 관련 업무에서 앤스로픽의 AI 모델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증해야 한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 사안의 핵심은 군이 합법적인 모든 목적을 위해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라며 “군은 특정 업체가 기술의 합법적 사용을 제한해 지휘 체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전투원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앤스로픽과 미 국방부 간 갈등이 격화된 가운데 나온 것이다. 양측은 앤스로픽의 AI 모델인 ‘클로드’의 사용 범위를 둘러싸고 충돌해 왔다.

앤스로픽은 자사의 기술이 완전 자율 무기나 국내 대규모 감시 시스템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요구했다. 반면 국방부는 합법적인 모든 목적을 위해 클로드 모델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 권한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측 협상이 결렬된 상황에서도 미 국방부는 이란과의 현재 진행 중인 군사 작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앤스로픽의 AI 모델을 활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앤스로픽은 이번 조치에 대해 즉각적인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지난주 성명을 통해 “공급망 위험 지정이 내려질 경우 법원에서 이를 다투겠다”고 밝혔다.

이번 공식 지정은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앤스로픽을 ‘국가안보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하라고 지시한 지 6일 만에 내려진 조치다. 당시 소셜미디어 게시글만으로는 공식 지정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번 통보로 행정 조치가 확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연방 기관에 앤스로픽 기술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 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앤스로픽은 문제가 생겼다. 내가 그들을 해고했기 때문”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최근 몇 달 사이 앤스로픽과 트럼프 행정부의 관계는 점점 악화돼 왔다. 백악관의 AI·암호화폐 정책 책임자인 벤처투자자 데이비드 색스는 앤스로픽이 규제에 대한 입장 때문에 ‘워크(woke) AI’를 지지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워크(woke) AI’는 인종·성별·소수자 문제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보적 가치나 정치적 올바름을 반영하도록 설계된 AI를 비판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다.

또한 앤스로픽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다른 빅테크 경영진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애플의 팀 쿡,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등이 트럼프와 교류한 것과 달리 아모데이는 지난해 트럼프 취임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아모데이는 내부 메모에서 행정부가 앤스로픽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이유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부하거나 “독재자식 찬사”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투자자들도 이번 갈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앤스로픽의 협력사인 데이터 분석 기업 팰런티어의 주가는 이날 장중 하락했으나 종가는 큰 변동 없이 마감했다.

팰런티어는 미국 매출의 약 60%를 정부 계약에서 얻고 있으며, 2024년 말 체결된 협약을 통해 군과 방위기관 프로젝트에서 앤스로픽과 협력해 왔다.

투자은행 파이퍼 샌들러는 보고서에서 “앤스로픽 기술은 군과 정보기관 시스템에 깊이 통합돼 있다”며 “해당 기술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팰런티어 운영에 단기적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앤스로픽은 지난해 7월 미 국방부와 2억 달러 규모 계약을 체결하고 기밀 네트워크에서 군사 임무 수행 과정에 AI 모델을 통합한 최초의 AI 연구소였다.

하지만 양측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오픈AI와 일론 머스크의 xAI도 기밀 환경에서 AI 모델을 운용하는 계약을 국방부와 체결했다.

OpenAI의 샘 올트먼은 앤스로픽이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오른 직후 국방부와의 계약을 발표하며 “국방부는 안전에 대한 깊은 존중과 최선의 결과를 위해 협력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