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만 해도 삼원계 배터리가 주력인 국내 배터리업계는 침울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앞다퉈 저렴한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뀐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휴머노이드 로봇, 로보택시, 자율주행 시장이 열리면서 한 번 충전하면 LFP 배터리보다 더 오래 쓸 수 있는 삼원계 배터리 수요가 늘어서다. 테슬라가 고급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니켈 비중이 94% 이상인 울트라 하이니켈 제품으로 갈아타기로 한 만큼 한국 배터리업계의 시장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5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중국 CATL, CALB, EVE에너지 등은 니켈 비중이 90% 수준인 하이니켈 배터리 수율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니켈 비중이 40~60%인 미드니켈과 80%짜리 배터리도 양산에 성공했지만 90% 이상 제품에는 아직 발을 들여놓지 못한 것이다.
업계에선 울트라 하이니켈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에 비해 2년 이상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니켈 비중을 96%까지 높이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이 선제적으로 투자한 ‘46시리즈’(지름 46㎜) 기술과 결합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46시리즈는 지름 21㎜인 원통형 배터리 대비 크기를 키워 에너지 효율을 끌어올린 기술이다.
중저가 배터리 시장에선 중국에 선두 자리를 내줬지만, 휴머노이드와 고급 전기차에 들어가는 울트라 하이니켈 시장에선 한국이 글로벌 표준을 마련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된다. 중국이 장악한 LFP 배터리는 낮은 에너지 밀도 때문에 휴머노이드와 인공지능(AI) 기반 전기차 등에 적합하지 않다. 중국 휴머노이드 업체조차 한국 배터리 업체에 삼원계 배터리를 요청하는 이유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인력 빼내기에 나선 만큼 인재 유출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