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개 싫어한다"는 말에 숨겨진 우주의 무게 [곽민지의 반려인간 리얼리티]

입력 2026-03-11 10:50
수정 2026-03-11 15:17

"아빠는 개 싫어한다."

우리 아빠도 그랬다. 현재 내 반려견인 김정원을 임시 보호하던 시절, 아니 그전에 다른 강아지를 임시 보호할 때도 아빠는 내가 개를 입양하지 않길 바랐다. 개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생명을 책임지는 무게를 걱정했다. 평생 직장인으로 살아온 아빠는 프리랜서 작가의 삶을 든든해하면서도 늘 걱정했다.

방송 일은 너무 바빠 보여 걱정이었고, 기고하는 일은 수입이 적어 걱정이었으리라. 그저 제 한 몸 밥이나 잘 먹고 잘 잤으면 하는 마음, 제 한 몸도 못 챙기는 것 같아 피어나는 조바심 속에서 강아지 하나가 더 들어오는 일을 아빠가 찬성할 리는 없었다.


김정원을 입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님 집 근처에서 산책을 하는데, 차 한 대가 속도를 천천히 줄이더니 이내 운전석 창문이 내려갔다. "민지야!" 아빠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나는 반가워서 아빠를 바라봤다. 아빠는 뒤에 따라오는 차가 있어 오래 대화할 수 없다는 걸 눈치채고는 소리쳤다. "애 단단히 입혀서 다녀라!"

겨울이었지만 내 강아지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었다. '얘가 입은 패딩이 내가 입은 것보다 비싼데…' 말하려는 순간 아빠는 창문을 닫고 주차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는 정원이가 패딩을 입어도 안타까워하고, 우리 밥 먹는 시간에 김정원 밥을 동시에 안 준다고 안타까워하고, 웅크리고 잔다고 안타까워하고, 집 안에서 배변을 못 한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때문에 산책 여러 번 나가는 날 걱정하는 척하다가도, TV나 보면서 좀 쉬려고 하면 꼭 한마디 한다. "정원이 데리고 나갈 때 안 됐냐?" 좀 전에 갔다 왔다고 하면 덧붙인다. "말을 못 하니 얼마나 불쌍해?" 아빠, 정말로 한 시간 전에 다녀왔어요.


지난 설은 우리가 김정원과 맞는 네 번째 새해, 일곱 번째 명절이었다. 김정원은 마당과 컨테이너 등을 전전하며 살다가 마지막으로 지내던 마당 주인이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산 지킴이'로 보내지기 직전에 나에게 왔다. 산에 묶어두고 보름에 한 번 물과 밥을 줄 사람이 올 거라는, 유기나 다름없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다행히 이를 발견한 구조자님이 용기를 내어 전 보호자를 설득했다. 추석이 지나면 산에 보낸다고 했고, 구조자님이 열심히 온라인을 통해 임시 보호처를 수소문하시던 차에 내 눈에도 띄어 우리 집에 오게 됐다.

김정원의 경우에는 명절을 기점으로 맞은 위기가 임시 보호로, 입양으로 이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개의 경우 명절이라는 위기는 대부분 유기로 이어진다. 최근 5년간 설과 추석 연휴에 버려진 반려동물은 6000마리에 달하고, 엿새간 황금연휴였던 2023년 추석엔 1000마리가 유기된 것으로 집계됐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사람들은 가장 힘없는 가족을 휴게소에, 여행지에 버린다. 가족이 아니었기 때문이리라.

"아빠는 개 싫어한다"로 시작하는 대부분의 릴스는 비슷한 내용이다. 개 키우는 걸 극렬히 반대하던 아빠가 막상 몰래 데려와서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니 소파에서 개를 끼고 TV를 보고, 침대에 올려서 데리고 자고, 개가 보여주는 작은 행동에 '개바보' 표정으로 껄껄 웃으시는 모습. 이런 극소수의 해피엔딩을 제외한다면 이 배경은 유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 끝내 반대해서, 애들과 잘 지내지 않아서, 아이가 생겨서, 집주인이 반대해서, 알레르기가 발견돼서…·더 이상 '아빠는 개 싫어한다' 릴스에 웃을 수 없는 이유다.

나는 1인 가구지만 김정원을 데려올 때 나와 연결된 대부분의 관계에 동의를 구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됐을 때, 아플 때, 급한 출장이 생겼을 때, 심지어 내가 사망했을 때 김정원의 후견인 혹은 보조 돌봄 담당자가 되어줄 수 있는지 확인했고 주변 사람들 대부분에게 알레르기가 없는지도 확인했다. 확인된 이후에는 당시 임시 보호견이었던 김정원을 데리고 주변인들을 많이 만났다. 돌이켜보면 결혼을 앞둔 친구나 가족들이 했던 일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둘만의 사랑으로도 살아갈 수 있고, 결혼은 당사자 둘이서 하는 일이지 주변 사람들과 하는 일이 아니기에 언제나 삶의 중심은 두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내 세상으로 무리 없이 들어오고, 내가 아끼는 상대를 내 세상이 무례 없이 받아들이길 원한다면 당연히 필요한 절차였다. 가장 간단한 가족 편입의 예시가 결혼이어서 그런 예를 들어봤지만, 나를 허브로 하는 두 관계를 연결할 때는 언제나 그렇다.

개를 버리는 것을 무엇으로든 정당화할 수 없겠지만, 확실한 건 사람들이 쉽게 입양하는 만큼 쉽게 버린다는 것이다. 아빠가 개를 싫어한다고 해도 무작정 데려오거나, 인터넷으로 본 이상적인 영상을 바탕으로 깜짝 선물이라며 상자 속에서 꺼내거나 하는 식으로 충동적으로 쇼핑하듯 집에 들인다. 그 후에야 깨닫는다.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것은 영원히 성장하지 않고 의사 소통할 수 없는 어린아이를 집에 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반려동물은 우리가 콘텐츠에서 본 동물들과 다르게 반응하기도 하고, 인간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에서 인간의 돌봄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 배설물을 필수적으로 동반하고, 많은 동물은 소음과 문제 행동도 함께 가지고 온다. 우는 어린아이처럼 그것은 나아질 수도 있지만, 영원히 달라지지 않는 특징일 수도 있다.


개를 싫어하는 아빠는 개가 주는 기쁨을 몰라서 싫어한 것일 수도 있지만, 개와 사는 것의 본질을 알거나 추측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온 가족의 동의 없이 입양을 추진한 결과는 결코 인간 혼자서 감당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되지 않을 유기를 겨우 피하더라도, 타의로 불청객이 된 동물의 삶이 윤택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같은 이유로 많은 동물 보호 기관은 구조견을 입양할 때 세세하고 복잡한 질의응답과 증빙을 요구한다. 그런 질문에 모두 답한 후에도 유기하는 사람이 현실에 너무도 많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개를 대신해 던지는 질문들이다. 현행법이 동물 유기를 방지할 실질적인 장치를 갖추지 못한 현실 속에서 너무 많은 개인정보를 요구한다는 질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일부 범법에 가까운 개인 정보 침해 사례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동물을 입양하기 전에 많은 질문에 답해봐야 한다. 스스로의 10년 후, 또 20년 후, 동물과 나의 삶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수많은 최악을 상상한 후에도 내가 이 가족을 진정으로 원하며 책임질 수 있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동물 대신 그 질문을 던지는 기관들이 보낸 질문지에 답하는 게 번거로워 펫숍에서의 구매를 선택한다 해도, 당장 피한 질문이 실제로 삶에 펼쳐질 때 가장 먼저 고통받는 것은 동물이기 때문이다.

아빠가 개를 싫어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개는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고, 아빠와는 함께 살 수 없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개와 함께 살 수 있도록 노력하거나 아빠 없이도 살 준비가 된 게 아니라면 당신과 개는 평안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반려 인간을 들일 때처럼 새 인연을 맞이할 가족과 당사자에게 노력과 시간을 들여 다정해져야 하는 이유다.


동물이 들어오는 것은 주인이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보호자가 나서서 한 우주를 다른 우주와 결합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두 우주에 시간을 주고 애정을 바탕으로 조금씩 겹쳐나가는 과정을 반드시 겪길 바란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우리라서, 반려동물 하나를 키우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당신과 당신 품에 안긴 동물을 이 사회에서 더 안전하고 포근하게 지켜줄 것이다.

김정원의 입양 당시 만장일치로 동의해 준 나의 마을과 외향인 보호자의 수많은 관계에서 언제나 노력해 준 내 강아지에게 특별한 감사를 보내며. 전국의 반려 인간과 반려동물 여러분, 언제나 무탈하고 행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