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투기가 이란으로 향하기 전 ‘돈’이 먼저 움직였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3개월 전부터 글로벌 자산시장에서는 에너지(원유)와 방위산업 상장지수펀드(ETF)로 뭉칫돈이 유입됐다.
ETF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1일부터 공습 전날인 2월 27일까지 3개월간 미국 증시에 상장된 ‘에너지 셀렉트 섹터 SPDR’(XLE)에 38억7700만 달러(약 5조5400억원)가 순유입됐다.
엑손모빌 등 화석연료 기업에 투자하는 ETF로 통상 ‘유가가 오를 것’에 베팅하는 기관투자가들이나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활용하는 투자처다. 지정학적 위기라는 ‘화약 냄새’를 맡은 거대 자본이 뉴스 헤드라인보다 앞서 대대적인 ‘매집’에 나선 셈이다.
S&P500 상장사 중 원유와 가스 생산 기업에 투자하는 ‘SPDR S&P 오일&가스 탐사 및 생산’(XOP) ETF와 ‘뱅가드 에너지 인덱스’(VDE)에는 각각 8400억원, 6700억원이 순유입됐다. 전쟁 직전 3개월간 미국 에너지 대표 ETF 3종에만 7조원 넘는 돈이 흘러들어간 것이다.
스텔스 폭격기를 개발한 노스롭그루먼과 록히드마틴, 보잉 등 대형 방산업체를 담은 항공우주&방산 ETF에도 자금이 밀려들었다. ‘아이셰어스 항공우주&방산 ETF’(ITA)에는 같은 기간 16억 달러(약 2조3000억원)가 순유입됐다.
1월부터 "이란 군사개입" 시사한 트럼프반면 지난해 미국 증시를 주도했던 기술주 ETF와 증시 지수를 추종하는 ETF에서는 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2월 27일까지 S&P500 지수 추종 대표 ETF인 ‘SPDR S&P500 ETF 트러스트’(SPY)에서는 50억9800만 달러(약 7조2900억원)가 순유출됐다. 나스닥100 지수를 추종하는 대표 ETF ‘인베스코 QQQ 트러스트’(QQQ)에서도 2억 달러(약 3000억원) 넘는 자금이 빠져나갔다.
기간을 2월 한 달로 좁히면 유출 강도는 더 높아진다. AI 버블 공포가 고개를 들면서 2월 1일부터 공습 전날까지 QQQ에서만 75억 달러(약 10조7500억원)가 빠져나갔다. 이미 가치를 높인 기술주에서 에너지·방산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섹터로테이션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이 자금이 공습을 미리 알고 들어온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지정학적 긴장은 공습 이전부터 누적돼 왔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국방 예산 1조5000억 달러 증액 계획 발표, 이란 핵 협상 교착, 중동 내 긴장 고조 등 복합적 신호들이 시장에 이미 깔려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초부터 이란 군사개입을 시사했다. 2025년 12월 말 이란 경제 붕괴로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발단이었다.
이란 정부가 시위대를 유혈 진압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1월 9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이란 정부가 과거처럼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개입할 것”이라며 “아픈 곳을 매우 세게 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 날에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이란은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도울 준비가 됐다”고 게시했다. 뉴욕타임스(NYT )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이란에 행사할 수 있는 군사 타격 선택지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이란 개입 시사는 베네수엘라 공습 직후에 나온 것이라 무게감이 달랐다. 여기에 줄곧 이란을 견제해온 이스라엘까지 가세해 이란에 대한 미·이스라엘의 군사 행동 가능성을 높였고 이는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이 됐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 1월 28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거대한 함대가 이란으로 향하고 있다. 이 함대는 강력한 힘과 열정, 목적을 지니고 신속하게 이동 중이다. 위대한 에이브러햄링컨 항공모함을 필두로 한 함대는 베네수엘라에 보냈던 것보다 더 큰 규모”라며 군사 개입을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원자재·섹터 순환매 성격도이번 머니무브가 원자재 가격 상승의 역사적 순환 패턴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매니저는 “시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원자재 가격이 금 → 비철금속 → 곡물 → 유가 순으로 상승 압력이 전이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경기 불확실성과 달러 약세 국면에서 안전자산인 금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이어 실물 경기 회복 기대가 높아지면서 구리·알루미늄 등 산업용 비철금속 수요가 살아나고, 유가는 지정학·OPEC 정책·글로벌 수요 등 복합 변수가 맞물려야 본격 상승하기 때문에 마지막 순서로 오르는 경향이 있다.
‘투자 구루’들 역시 일찌감치 움직였다. 13F 공시에 따르면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는 지난해 4분기 쉐브론 보유 주식을 800만 주 이상(약 7%) 늘렸다.
쉐브론은 현재 벅셔 포트폴리오에서 5번째로 비중이 높은 종목이다. 버핏의 기준인 안정적 현금흐름과 주주환원에 방점을 찍은 선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공습 전 에너지 비중을 높인 선취매가 됐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