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폐인 소리도 들었지만"…3년 사이에 무슨 일이 [테크로그]

입력 2026-03-05 20:00
수정 2026-03-05 20:18
# 한때 주변에서 '게임 폐인'으로 불릴 정도로 게임을 즐겼던 소프트웨어 개발자 A(32)씨는 요즘 퇴근 후 자연스럽게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로 손이 간다. 그는 "밥 먹을 땐 유튜브를 보면서 먹고, 잠들 때는 인스타를 보는 게 일상이 된 지 꽤 됐다"고 했다.

국내 게임 이용률이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게임을 떠난 이용자들의 '대체 여가' 1위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영화·소셜미디어(SNS) 등 '영상 시청'이었다. 인스타그램·틱톡 등으로 대표되는 영상 숏폼 플랫폼이 게임이 파고들 공간인 여가 시간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이용률 3년 만에 74%→50%로 급락
5일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 '202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게임 이용률은 50.2%로 집계됐다. 2022년 74.4%로 정점을 찍은 뒤 3년 연속 내리막을 걸어 24%포인트 넘게 급락한 수치다. 2024년(59.9%)와 비교해도 1년 새 9.7%포인트가 빠졌다.

더 주목할 부분은 이탈 이유다. 게임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로 '이용 시간 부족'(44.0%)이 1위를 차지했고, '게임 흥미 감소'(36.0%)에 이유 '대체 여가 발견'(34.9%)이 3위에 올랐다. 게임 자체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게임 대신 쓸 다른 무언가가 생겼다는 얘기다.

그 '다른 무언가'는 영상이었다. 게임을 그만둔 뒤 어떤 여가를 즐기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86.3%가 'OTT·영화·TV·애니메이션 등 시청 중심 감상 활동'을 꼽았다. 2위인 운동(40.3%)을 두 배 이상 앞지르는 압도적인 수치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최근 몇 년 만에 유튜브 쇼츠 등이 게임의 대체재로 자리 잡고 있다"고 짚었다.

이 가운데 완전히 게임을 끊은 게 아니라 '덜 몰입하는 방식'으로 바뀐 이용자들도 늘고 있단 관측도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하나에 시간을 다 쏟기보다 유튜브 등 다른 것들을 보면서 틈틈이 즐기고 싶어 하는 이용자들이 많다"며 "캐릭터가 알아서 성장하는 '방치형' 게임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설명했다.숏폼은 TV까지 점령 중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 숏폼 플랫폼의 사용 지표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인스타그램 월간 사용 시간은 326억분, 틱톡은 92억분, 틱톡 라이트는 64억분으로 각각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숏폼 플랫폼들은 이제 스마트폰을 넘어 TV 화면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IT 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은 지난해 12월 아마존 파이어TV에 릴스(Reels) 앱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 2월 구글 TV 기기로도 서비스를 확대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시간마저 숏폼으로 채우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2025년 6월에는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이 틱톡도 TV 화면에 최적화된 앱을 기획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데이비드 카우프만 틱톡 글로벌 제품 총괄은 당시 "거실은 우리가 매우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새로운 영역"이라고 말했다."진짜 경쟁자는 숏폼" 게임업계는 이 같은 흐름을 이미 체감한 분위기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국내 주요 게임사 관계자들로부터 "우리의 진짜 경쟁자는 경쟁작이 아니라 숏폼"이라는 취지의 말이 종종 나온 바다.

게임사들도 손 놓고 있지만은 않다. 넥슨은 지난해 9월 국내 게임사 최초로 자체 숏폼 커뮤니티 플랫폼 '넥슨 피크(Peak)'를 선보였다. 게임 플레이 하이라이트, 공략 팁, 밈 등 유저 중심 콘텐츠를 숏폼 영상·이미지·텍스트 형태로 올리고 공유할 수 있으며, 활동 유저는 '피커(Peaker)'로 불린다. 그간 외부 채널에서 게임 콘텐츠가 소비되는 동안 수익은 해당 플랫폼으로 흘러갔는데, 이 구조를 바꾸고 유저 창작물이 IP 확장과 수익으로 직결되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플랫폼을 직접 만드는 쪽이 있는가 하면 게임 자체의 흡인력을 높이는 방향도 잦다. 일례로 데브시스터즈는 '쿠키런: 킹덤'에 다양한 난이도의 미니게임을 순환 형태로 운영하고, 스토리와 연계한 숏 애니메이션을 유튜브에 꾸준히 올리는 방식으로 이용자 붙잡기에 나서고 있다. "펄어비스 '붉은사막', 넥슨 '아크 레이더스' 등 게임 자체의 몰입도를 확 높이는 '웰메이드' 전략도 하나의 대응책"으로 업계에선 거론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하루 여가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짧고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가 그 시간을 먼저 채워버린다"며 "게임을 켜기도 전에 이미 피로해진 이용자를 붙잡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