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번던스: 결핍을 넘어 풍요로운 사회를 위한 해법
에즈라 클라인, 데릭 톰슨 지음 | 홍지수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만2000원서로를 적으로 규정하며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 양극화 현상’이 오늘날 전 세계 정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뉴스만 틀어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극렬하게 싸우는 양당 체제의 구조적 한계가 만들어온 여러 가지 결핍을, 결코 남의 이야기로만 볼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풍요’를 뜻하는 어번던스는 이러한 이유로 ‘결핍의 늪에 빠져 헤매는 미국을 어떻게 하면 다시 생산적인 나라로 바꿀 수 있을까’라는 고민 끝에 나온 자기반성서이자 앞으로 나아갈 방향들에 대한 핵심 질문들을 모은 정책 제안서다.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주목받는 팟캐스트 진행자인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이 함께 쓴 이 책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동시에 출간되며 미국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1위를 차지하고 빌 게이츠와 버락 오바마의 추천을 받으며 미국 내 정계 인사들이 앞다퉈 찾아 읽은 필독서로 오랫동안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과 논쟁을 불러온 이 책은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이 대체 왜 시스템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지를 구조적으로 들여다보고 해부하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분명 미국 정치 문제이자 미국 사회가 겪는 혼란을 짚고 있음에도 결코 남의 나라의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미국의 정책 결정과 문제들이 바로 우리의 일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저자인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은 ‘풍요’를 소비재의 넘침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충분한 상태”로 재정의한다. 물건은 넘쳐나지만 주거, 에너지, 의료, 인프라는 부족한 현실. 이 역설을 직시하는 순간 독자는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구조적인 실상의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욕망을 느끼게 된다. 왜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정작 필요한 집을 충분히 짓지 못할까? 왜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은 더디게 진행될까? 왜 대규모 공공사업은 늘 예산을 초과하고 일정이 늦어질까? 저자들은 그 이유를 기술이나 아이디어 부족에서 찾지 않는다. 문제는 ‘실행 역량’에 있다고 말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능력은 커졌지만 해결하는 능력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진단은 날카롭다.
이 책은 한쪽 진영만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스로 진보 성향임을 밝힌 두 저자가 먼저 들여다보는 것은 오히려 진보 진영 내부의 한계다. 좋은 의도로 도입된 규제와 절차가 거듭 덧붙여지며 누적된 결과 아무 일도 신속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정부를 축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에 정부가 연구를 지원하고 장애물을 제거하며 혁신을 촉진했던 워프 스피드 작전 사례로 정부가 문제이면서 동시에 강력한 해결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한다.
책을 통해 저자들이 제안하는 해법은 분명하면서도 현실적이다. 말로만 정의를 외치기보다 실제로 더 많이 건설하고,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빠르게 실행하자는 것이다. 풍요란 사치스러운 소비가 아니라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집과 에너지, 의료 같은 기본 조건이 충분히 마련된 상태를 뜻한다. 부족한 것을 나누는 결핍의 정치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충분히 만들어내는 공급의 정치로 방향을 전환하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은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역시 주택 문제, 에너지 전환, 정책 지연 등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느라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못 보고 있지는 않은지, 엘리트 이기주의와 규제주의, 불필요한 행정 절차와 이해당사자들의 충돌과 논리에만 매달려 진짜 필요한 일은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다. 정치색을 떠나 진보나 보수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는 시의적절한 이 지침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 만능이 되려다가 무능해지는 정치를 벗어나야 할 때가 왔다.
이혜영 한경매거진앤북 출판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