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 장기화 우려가 국내 증시를 덮치며 코스피지수가 12% 넘게 급락했다. 이틀 새 1150.59포인트 빠지며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893조6437억원이 허공에 날아갔다.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동시에 뛰면서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지수 하락폭이 과도하다며 저가 분할매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진단했다.◇“3월엔 박스피 갇힐 가능성”
투자심리를 위축시킨 건 이란 전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다. 이란이 사망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차남인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선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최고지도자를 제거한 뒤 전쟁을 단기간에 끝내겠다는 미국 기대와는 다른 결과다.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던 10여 척의 선박이 미사일 공격을 받고 불에 탔다는 이란 측 발표가 불안심리를 극대화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8달러까지 치솟고, 미국 물가는 0.8%포인트 상승할 것이란 분석 결과를 내놨다. 미국 기준금리 인하에도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당장 5일부터 반대매매 물량이 쏟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예상이 나온다. 이날 낙폭이 컸던 것도 반대매매를 회피하기 위한 ‘던지기 물량’이 대거 출회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지난 3일 급락으로 증거금 보충을 요구받은 투자자는 4일까지 납입하지 않으면 5일부터 반대매매를 당할 수 있다.
전쟁이 1개월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3월 증시는 박스권에서 움직일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전쟁 여파로 3월은 변동성이 커지며 상승세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하락폭 과도…저가 매수는 유효”증시가 공포에 휩싸였지만 전문가들은 잠시 숨 고르기를 한 뒤 반등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코스피지수가 이틀간 20% 안팎 빠진 상황에서 ‘패닉셀’(공포 매도)에 나서 얻을 실익이 없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코스피지수 하락폭이 과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4일 하락률 12.06%는 2001년 9·11 테러 당시(-12.02%)와 비슷한 폭이다.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1배로 급락했다. 과거 10년 평균 수준인 10배를 크게 밑도는 수치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가 20%가량 하락한 것은 이란 전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원자재 공급망 차질 우려를 선반영한 것”이라며 “지수는 일단 5000선 부근에서 저점을 형성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대표도 “역사적으로 지수가 PER 9배 밑으로 내려온 경우 대부분 한 달 이내 낙폭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분할 매수할 만한 시기가 왔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강자인 에셋플러스자산운용 국내주식운용본부장은 “반대매매 물량이 나오면 추가 조정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한국 주식은 매력적인 가격대까지 내려왔다”며 “상장기업의 이익 증가율이 상향되고 있는 만큼 저가에 분할 매수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저렴해진 기존 주도주를 공략하라는 조언도 내놨다. 강 본부장은 “테크윙 등 일부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종목은 이날 하락폭이 제한적이었다”며 “이익이 확실한 반도체주를 공략할 만하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57조8905억원으로 전달 컨센서스(156조1228억원)보다 더 높아졌다. 삼성전자(185조3095억원) 역시 전달(183조1146억원) 대비 상향됐다. 안정환 인터레이스자산운용 대표는 “증시의 진짜 위기는 인공지능(AI) 투자 사이클이 꺾이는 것”이라며 “반도체주의 실적 상향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심성미/맹진규/박주연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