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환율·금리 '3高 쇼크' 우려…"장기화땐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

입력 2026-03-04 17:55
수정 2026-03-05 01:22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 격화하면서 유가와 환율, 금리가 동시에 치솟는 ‘3고(高) 쇼크’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이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을 잠재성장률보다 높은 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정부 목표도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동발 ‘3고 쇼크’ 트라우마
4일 서울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43%포인트 오른 연 3.223%에 마감했다. 중동 사태 전인 지난달 27일(연 3.041%) 대비 0.182%포인트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은 야간 거래에서 한때 1506.5원을 기록해 2009년 3월 금융위기 후 17년 만에 1500원을 돌파했다.

우리 시장이 이란 사태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중동 지역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고유가·고환율·고금리의 3중 충격에 시달린 트라우마 때문이다. 한국은 에너지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데 원유 수입의 약 70%, 액화천연가스(LNG)의 20%가 이란이 폐쇄하겠다고 공언한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우리 경제가 처음 겪은 대외 충격형 경제위기도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원인이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여파로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배럴당 3달러이던 유가가 12달러로 급등했다. 이 바람에 이듬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3%를 기록했고, 경제성장률은 7.7%로 전년(14.9%)에 비해 반 토막 났다. 1990년 걸프전과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에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군사 충돌 장기화로 유가가 정상 수준을 크게 벗어나는 경우다. 급등한 유가와 환율이 연쇄 반응을 일으켜 소비자물가가 치솟고, 이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이상 내리지 못하거나 인상에 나서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시나리오다.

한은은 올해 우리 경제가 2.0%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두바이유 평균 가격을 배럴당 64달러로 예상하고, 물가상승률은 2.2%로 제시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두바이유 가격이 연평균 배럴당 100달러 수준에 이르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1%포인트 오르고, 경제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3일(현지시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80.39달러로 전날보다 5.04% 올랐다. ◇최대 변수는 호르무즈 봉쇄최대 변수는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얼마나 지속되느냐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유가(서부텍사스원유 기준)는 수급 상황에 따른 적정 가격 배럴당 55달러에 이란 제재 약 6달러, 호르무즈해협 봉쇄 우려 약 10달러 등 총 16달러의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황 연구원은 “최근 유가 급등은 수급 변화보다는 호르무즈해협 봉쇄 가능성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 확대 영향이 큰 만큼 이 지역에서 유조선 운항이 정상화되면 리스크 프리미엄은 빠르게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과 이란이 공습과 보복을 반복하는 충돌을 이어가거나 미국의 지상군 투입 등 확전 양상이 이어지면 3고 쇼크가 심각해지면서 한은이 통화정책 피벗(금리 인상으로 방향 전환)마저 고려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이 경우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편성 시기를 앞당기고 규모를 키워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고환율은 외부 국제금융시장의 영향이 크고 호르무즈해협 봉쇄도 미국이 장기간 용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환율과 유가 급등 모두 열흘 안팎의 단기 변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영효/강진규/하지은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