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린 "외할머니 손숙, '브리저튼4' 노출장면 보신 후…" [김소연의 현장노트]

입력 2026-03-04 15:10
수정 2026-03-04 15:11


배우 하예린이 동양을 대표하는 글로벌 연기자가 되어 돌아왔다.

하예린은 4일 서울시 중구 커뮤니티 마실에서 진행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브리저튼' 시즌4(이하 '브리저튼4') 간담회에서 "솔직히 가끔 제가 가면증후군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며 "이 자리에 온 게 운 때문인 것 같고, 이 운이 언제 다할지 그 두려움도 느낀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하예린은 "한가지 중요한 점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라며 "책임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동양을 대변하는 배우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변화를 선도하고 역할을 맡을 수 있음에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브리저튼'은 영국 리전시 시대의 런던 상류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브리저튼 가문 남매들의 로맨스를 담은 작품이다. 줄리아 퀸의 베스트셀러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제작되어 넷플릭스를 대표하는 흥행 콘텐츠로 등극했다.

시즌4는 자유로운 영혼의 차남 베네딕트 브리저튼(루크 톰프슨)이 가면무도회에서 하녀인 소피 백(하예린)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스터리한 은빛 드레스를 입고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던 소피 백이 계급 차이를 넘어 가족들과의 갈등과 방해를 딛고 베네딕트와 맺어질 수 있을지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고조시켰다는 평이다.

하예린이 연기한 소피 백은 사교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용주 밑에서 하녀로 일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낸 인물이다. 넘치는 기지로 언제나 자신의 상황을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내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어느 날 변장을 하고 바이얼릿 브리저튼의 가면무도회에 참석해 베네딕트 브리저튼을 만나면서 극적인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하예린은 한국 연극계 대모라 불리는 배우 손숙의 외손녀다. 호주에서 대부분의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국내 예고에 진학해 연기를 배웠다. 파라마운트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헤일로'에서 관 하 역할을 맡아 얼굴을 알렸고 호주 드라마 '리프 브레이크', '배드 비헤이브어' 등에 출연했다. 오는 11월 개봉 예정인 '듄: 프로퍼시'에도 등장한다.

하예린은 "할머니의 연극을 보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며 "할머니가 '브리저튼4'를 다 보셨다고 해서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하예린은 "노출 장면을 보신 후엔 좀 민망하셨다고 하더라. 전 넘겨 보실 줄 알았는데 정말 다 보신 거 같더라"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다. 다음은 하예린과 일문일답.



▲ '브리저튼4'가 공개되고 한국 취재진과 인사하게 됐다. 한국에서 2위, 글로벌 1위를 했다.

= 한국에 온 지 1년 반 정도 됐다. 정말 설레고 긴장된다. 한국에서도 사랑을 받는다고 들었다. 차트 2위까지 올라갔다고 하더라. 외국 작품이 그렇게 순위에 오르는 게 쉽지 않은데 감사하고 신기하더라. 손에 닿지 않는, 체감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 소피 백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봤나?

= 굉장히 똑똑하고, 겉모습은 단단한데 속은 여리고 다양한 면이 있는 인물이다.

▲ 어떻게 캐스팅이 됐을까.

= 해외에서는 셀프 테이프를 보낸다. 엄마 고향이 충남 태안이라, 롯데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었는데 에이전트에서 ''브리저튼' 아냐'고 연락이 왔다. '오디션이 있으니 24시간 안에 제출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2개 장면을 하루 만에 외우고 찍어서 보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냈다. 당연히 답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이후 줌 미팅을 해야 한다고 들었고, 루크 톰프슨과 함께 또 줌 미팅을 해보라고 하셨다. 그러고 또 며칠 후에 강남역에서 어머니와 브런치를 먹다가 연락을 받았다. 소피 백 역을 맡았다고 했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도 같이 눈물을 흘렸다. 주변 사람들이 '이 여자 괜찮나'라고 하는 표정을 봤다.(웃음)

▲ 그 과정에서 느낌이 왔을까.

= 함께 호흡을 맞출 땐 느낌이 좋았는데, 저보다 더 예쁜 배우나 매력 있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는 그냥 최선을 다하자 싶었는데, 루크 톰프슨 말로는 그게 보였다고 하더라.

▲ 루크 톰프슨과 호흡은 어땠나.

= 시간 순서대로 찍었다. 소피 백과 베네딕트도 서로 알아가면서 좋아지듯 우리도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다. 다만 3회 호수 장면을 조금 일찍 찍었다. 루크 톰프슨의 건강을 위해 그때 서로 많이 알아갔던 시간이었다. 또 유머 코드가 비슷한 거 같다. 너무 존경하는 배우고 인간으로서 사랑이 많은 친구라 그런 게 나온 거 같다.

▲ 소피 백을 연기하면서 어떤 지점들을 생각했을까. 신데렐라를 주체적으로 표현하면서 고민한 부분도 있는데.

= '브리저튼'은 다양한 인종의 배우가 등장한다. 19세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현대적인 감각이 있다. 그래서 인종적인 부분보다는 인간의 감정, 진심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그 부분에 집중하려 했다. 그래서 누구나 상상하는 사랑 이야기와 상황을 투영해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야기가 된 거 같다.

또 신데렐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그 일례로 소피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베네딕트의 제안을 거절한다. 소피 백의 예전에 있던 트라우마적인 부분에 신경 썼다. 영국 발음, 무용, 역사적인 부분 등도 조사했지만 그 인물과 저의 공통점을 많이 찾아냈다. '약수터 박수' 이런 건 의도적으로 나온 건 아닌데 소피 백이 여유를 못 즐기니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온 거 같다.

▲ 한국의 예고에서 연기를 처음 시작했다.

= 한국의 예고에서는 업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다. 어떻게 작품을 조사하고 연기로 전달될 수 있는지를 공부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 등을 학교에서 배웠다.

▲ 연극계 대모인 손숙의 외손녀다. 손숙이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해준 조언은 없었는지,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할머니의 조언은 딱히 없었다.(웃음) 할머니도 이 작품을 다 보셨다. 제게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후배들과 같이 보신 거 같더라. 할머니가 눈이 안 좋으신데 화면 가까이에서 보시고 '자랑스럽다. 사랑해'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그걸 보니 따뜻하고 짠하기도 했다. 노출 장면은 '민망하더라' 하시더라. 전 넘어갈 줄 알았는데 다 봤다고 하시더라.(웃음)

▲ 배우의 시작점이 손숙이라고 하지 않았나.

=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오는데 항상 할머니가 연극을 하셨다. 그때 인상 깊었던 게 1인극이었는데 베개를 들고 아이처럼 울고 했던 게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이게 예술의 힘이구나 생각했다. 모두가 감정을 느끼는 건 비슷하고 연극을 통해 위로와 공감을 준다는 게 이 직업이 멋진 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할머니가 '노인의 꿈'이라는 연극을 하고 있는데 내일 보려고 한다. 금요일 출국인데 할머니가 보러 오길 바라신다. 오늘 오전에도 할머니를 만났는데, 할머니가 예전엔 '손숙 손녀'였는데 이젠 '하예린 할머니'라고, 그게 너무 좋다고 해주셨다. 마음이 참 좋더라.

▲ '브리저튼'은 세계적인 흥행 콘텐츠이지만 노출 장면도 많았다. 부담은 없었을까.

= 부담과 고민이 많았다. 사회가 미디어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강하다. 비난하고 판단해도 되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 두려움과 부담도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서구 사회 대비 미의 기준이 더 엄격하고 다른 면도 있지 않나. 저도 한국에서 자란 시간을 돌아보며 제 몸에 대해 생각한 시간이 있었다. 대역께서 훌륭하게 역할을 해주셨고 모든 스태프도 그런 장면을 찍을 때 안전을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셨다. 그리고 이렇게 '안전하다' 생각하면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고 본다.

▲ 원작과 달리 소피의 성이 '백'으로 바뀌었다.

= 출연 결정 이후 미팅을 했는데 'B'로 시작하는 성이 뭐냐고 물으시더라. '박'은 P니까 그래서 쉽게 '백'이라고 말씀드렸다. 너무 쉽게 물어보고 인정받아 바뀌었다. 제가 한국 배우라 제 정체성에 맞는 성으로 바꾸는 게 당연하다 생각해서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데 하예린으로 활동하고 있다.

= 어릴 때부터 예린이라는 이름을 써왔다. 영어 이름이 없었다. 되돌아보면 이게 감사하다.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거 같아서 쭉 '예린 하'로 살아왔다.

▲ 동양계 배우로 촬영장에서 어려움은 없었을까.

= 새로운 에너지를 원하시더라. 반갑게 대해주셨다. 이번 작품은 제가 7년 동안 연기자로 활동하며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현장이었다.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 베네딕트를 '벤서방'이라고 하는데, 루크 톰프슨은 왜 안 왔을까. 실제 커플이 되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더라.

= 저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뉴욕에서 다른 홍보를 하고 있다. 각자 홍보 활동을 할 시간을 줬는데 저에게 한국에서 이런 시간을 주어 감사하다. 루크 톰프슨과의 관계는 베네딕트와 소피 백의 사랑이 현실로 옮겨지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다. 저는 루크 톰프슨을 친구로서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 2022년 '헤일로' 공개 당시 동양을 대표하는 글로벌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지점에 온 거 같다.

= 아직은 시작점 같다. 저는 가끔 가면증후군을 앓는 거 같다. 이 자리에 온 게 운 때문인 것 같고 이 운이 언제 다할지 그 두려움도 느낀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책임감을 느낀다는 거다. 책임감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동양을 대변하는 배우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음에 기쁘게 생각한다. 특히 이번 현장에서 리더십을 많이 배웠다. 주인공으로서 사람들을 챙기는 것들이다. 두려움에도 해냈을 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시청자들이 보기에 동양계 배우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변화가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그런 상황인가.

= 확실히 태도의 변화가 있다. 이전 대비 지금은 보다 공평하고 평등한 지점이 생긴 거 같다. 제가 오디션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된 거 자체가 변화를 느끼는 지점이다. 비중이 작은 역할이라도 동양인 배우에게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다는 거 자체가 그렇다.

▲ '브리저튼'은 다인종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느낌이다. 그 비법이 무엇일까.

= 피부색이나 외부적인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거 같다. 편견 없고 인종 차별이 없는 현장이라 희망이 가득하다. 우리의 일상적 모습을 잘 그려낸 거 같다. 이런 모습이 부자연스럽다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분리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 그럼에도 프로모션 과정에서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

= 저도 그런 반응들을 본 기억이 있다. 현장에서 전혀 차별적이라고 느끼지는 못했다. 다만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이해되는 지점은 있다. 이런 순간들은 간과하는 디테일에 관용을 보일 기회가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을 통해 함께 배워나갔으면 한다. 지나친 비난이나 혐오로 나아가지는 않았으면 한다.

▲ 큰 사랑을 받아서 차기작에 대한 부담감을 가질 수 있을 거 같다.

= 배우로서 성장하는 것에 집중하려 한다. 누군가에게 만족감을 주고 증명하기보다는 스스로 증명해내려 한다. 한국 활동도 기회만 있다면 감사하다.

▲ 소피 백이 아닌 하예린으로서 '브리저튼' 중 이상형을 꼽아본다면?

= 베네딕트다. 예술적인 부분이나 농담하는 코드도 잘 맞는다. 베네딕트를 제외하면 앤소니다. 가족을 지키는 책임감이 좋아 보인다.

▲ 다음 시리즈에도 만날 수 있을까.

= 브리저튼 가족이 됐으니 다음 시즌에도 볼 수 있을 거 같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