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3월 04일 15:05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상장폐지 위기를 피하기 위해 주식 수를 줄이는 액면병합 카드를 꺼내 드는 상장사가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주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에 대해 퇴출 방침을 발표한 것에 대한 대응 성격이다.
하지만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를 끌어올릴 수 없는 이같은 대응은 오히려 거래 감소와 같은 부작용을 부를 수 있어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전날인 3일 하루에만 6개 기업이 액면병합 결정을 공시했다. 지난달 12일 금융당국이 동전주에 대한 상장폐지 규제 도입을 본격화했기 때문이다. 해당 발표 이후 현재까지 액면병합을 결정한 상장사는 총 33곳에 달한다. 3주 안팎의 기간동안 지난해 연간 건수(17건)의 두 배 수준에 이르는 액면병합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주가가 1000원 미만인 상장사다. 여러 주식을 하나로 합치는 액면병합을 마무리하면 당장은 동전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를 들어 코스닥의 한주라이트메탈은 2주를 1주로 병합하기로 했다. 500원인 액면가가 1000원이 되면서 유통 주식 수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방식이다. 이 경우 600원 안팎인 한주라이트메탈 주가는 약 1200원까지 상향된다.
이들 기업은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액면병합 외에도 신사업을 정관에 추가하고 한동안 멈춰 있던 배당을 재개하는 등 주가를 띄우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최대주주의 추가 지분 매수, 만기 전 사채 취득 등으로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방어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은 곳도 있다.
다만 액면병합 이후에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 기업이 적지 않다. 금융당국은 단기적으로 상장폐지 위기를 벗어나려는 '꼼수'를 막기 위해 병합 이후에도 주가가 액면가를 밑돌 경우 상장폐지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한솔홈데코는 액면가 1000원을 5000원으로 합치는 5대 1 액면병합을 결정했다. 현재 600원 수준인 주가는 병합 이후 산술적으로 3000원 수준으로 조정된다. 하지만 여전히 주가가 액면가보다 낮아 상장폐지 대상이다. SH에너지화학, 케스피온 등 액면병합 대열에 합류한 다른 기업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오는 7월부터 적용되는 '시가총액 200억원 미만' 퇴출 규제에 해당하는 곳도 다수다. 액면병합으로 주당 가격은 올릴 수 있지만 기업의 전체 가치인 시가총액은 변하지 않는다.
현재 액면병합을 결정한 기업 중 상당수가 시가총액 200억원 안팎에서 위태로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주가를 부풀린 것만으로는 퇴출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식 병합 과정에서 유통주식 수가 강제로 줄어들면서 발생하는 '거래 절벽' 현상도 경계 대상이다. 원래 인기가 없던 종목이 주식 수까지 줄어들면 거래 자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빠질 수 있어서다.
현재까지 액면병합을 결정한 기업의 절반 가까이가 하루 거래량이 2억원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거래량이 마르면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의 진입이 사실상 차단돼 결국 시장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액면병합은 주가를 부풀리는 착시효과를 낳는 임시방편일 뿐 실적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가 역시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라며 "거래량 감소로 인한 변동성 확대 등 부작용이 큰 만큼 단순한 수치 변화에 현혹되지 말고 기업의 펀더멘털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