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보다 무섭다"…월가 덮친 1.8조달러 시한폭탄 공포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입력 2026-03-04 13:04
수정 2026-03-04 13:27

고난의 2월을 보낸 미국 증시가 이번에는 이란 전쟁이라는 대형 지정학적 리스크를 맞닥뜨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군사 자전에 대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 없다. 우리는 무엇이든 해낼 것”이라며 단기 종결을 기대하는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도 미국 증시는 ‘걱정보다는’ 선방하고 있습니다. 3일(현지시간)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장 초반 일제히 2% 이상 급락했지만 이후 낙폭을 줄여 1% 안팎 하락 마감했습니다. 시장에선 전쟁이 길어지면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인플레이션이 재점화하고,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와 성장 경로에 차질이 생기면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일부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달러가 급등하고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확산한 한편, 국채 매도세는 주춤해진(국채 금리 상승폭 축소)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시장 참여자들은 이란 전쟁이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습니다. 씨티증권은 과거 시장 위기 당시 대비 완화적인 글로벌 통화정책 환경을 고려할 때 "당장 대규모 위험자산 폭락은 기본 시나리오가 아니다"라고 했고, UBS는 "이란 사태는 지정학적으로 중대한 사건이지만 현재 군사적 대응을 감안할 때 분쟁은 단기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오히려 지금 월가의 진짜 걱정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AI가 가져오고 있는 구조적 변화, 그리고 사모신용 시장의 부실 위험입니다. 트럼프는 왜 하필 지금 이란을 쳤나이란 전쟁이 장기화되지 않을 것이란 월가의 전망부터 살펴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필 지금 이란을 타격한 배경에는 표면적인 핵무기·탄도미사일 위협 제거 외에도 여러 포석이 깔려 있습니다.


오바마, 바이든 등 전임 미국 대통령들은 해내지 못한 '이란의 37년 신권 통치를 무너뜨린 대통령'으로서의 성과도 그 중 하나입니다. 뉴욕포스트와 디애틀랜틱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번 작전을 짜면서 참모들에게 "이 일은 나만이 결단할 수 있다" "전임 대통령들은 실패한 일을 해내는 최고의 외교 정책 성과가 될 것"이라는 말을 수 차례 반복했습니다. 미국을 끌어들여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고 싶어 했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를 잘 공략했습니다.

더 큰 그림은 중국을 고립시키고 미국의 패권을 굳히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입니다. 중국은 제재에 막힌 이란으로부터 헐값에 하루 약 160만 배럴(중국 전체 석유 수입의 약 15%)의 원유를 사들여 왔습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이어 이란에서도 친중 정권을 제거함으로써 불과 두 달 만에 중국의 핵심 원유 공급망 두 곳을 교란했습니다.

미국이 이번 군사 작전 결과 이란산 원유 공급까지 통제할 수 있게 된다면 중국은 막대한 저가 에너지원을 상실하게 됩니다. 이미 부동산 침체와 소비 부진에 시달리는 중국 경제에 타격을 입힐 수 있습니다. 이달 말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압박하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의도도 있어 보입니다.


과거에 비해 중동 군사 작전으로 인한 유가 상승 리스크를 감수하기 쉬워졌다는 점도 작용했습니다. 미국은 2000년대 셰일 혁명 이후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됐습니다. 중동에 대한 석유 의존도는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블룸버그의 원자재 전문 분석가 블라스는 "(이란 작전을 통해 중동의 혼란이 커지더라도) 미국이 과거 경험했던 '오일 쇼크'가 재현될 가능성은 낮아졌다"며 "베네수엘라 원유까지 확보한 미국은 유가 리스크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면서 대외 군사 행동의 제약을 상당 부분 제거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란 리스크는 무시해야"이제 남은 변수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① 이번 전쟁이 장기전으로 번질 지 ② 호르무즈 해협 봉쇄나 중동 지역 에너지 인프라 타격으로 원유 공급에 실질적 차질이 발생하는지 ③ 이란 내 권력 공백이 어떻게, 얼마나 빠르게 해소될 것인지 입니다. 핵심은 전쟁이 길어지면 고유가가 오랫동안 지속돼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점화되고, 금리 인하 기대와 위험 프리미엄이 재조정되면서 위험자산 시장의 유동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로서 시장은 장기전이 되지 않을 것이란 데 베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이를 원치 않습니다. 저명한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라크전의 교훈에 따라 단기 군사 작전 이상으로 시간과 자원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야데니리서치의 야데니도 지상군 투입 없이 단기전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시장의 낙관보다 더 길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관점에서 핵심 변수는 결국 에너지 가격인데, 미국이 원유·천연가스 시장에서 행사하는 직간접적 가격 영향력이 과거보다 높아진 만큼 에너지 가격의 상방도 제한적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장의 불안은 완화될 수 있습니다. 실제 3일까지 브렌트유는 최대 14% 올랐음에도 2024년 중반 수준 가격대에 그쳤고, 40% 폭등한 유럽 가스 가격도 2022년 고점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이 된 스티브 아이스먼은 투자자 입장에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번 분쟁으로 포트폴리오에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단 하나도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현재 상황에 반응하면서 유가가 뛰었지만, 상황이 잘 풀리면 두 달 뒤엔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지금의 하락은) 매우 긍정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펀더멘털에 변화가 없다면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윌슨 CIO도 "유가가 역사적으로 유의미한 수준까지 급등해 그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 한, 미국 경기 회복 사이클과 그로 인한 주식 강세 전망은 바뀌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지정학적 갈등이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길지 않았습니다. 바클레이즈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분쟁이 발발한 뒤 S&P 500 지수는 첫 10일간 5~7% 하락했지만 한 달 뒤엔 보합으로 회복했고, 12개월 뒤엔 8~10% 상승했습니다. "진짜 위험, $1조8000억 사모신용 불안" 월가가 이란 사태보다 더 두려워하는 것은 수면 아래에서 곪고 있는 사모신용 발(發) 위기 가능성입니다. 씨티는 "중동 리스크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최근 시장에 쌓여온 AI 고밸류에이션 부담과 사모·크레딧 시장 불안이 더 넓은 자산시장으로 번질지 여부"라고 했습니다. 씨티는 "올 2월 들어 기술주 하락, 크레딧 우려, 채권 강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면서 금리 변동성이 1년 만에 가장 큰 수준까지 확대됐다"면서 주식보다 채권·금리가 시장의 중심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사모신용 시장에선 각종 스트레스 징후가 줄줄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웰스파고, 제프리스 등 월가 은행들도 돈을 빌려준 영국 모기지 업체 MFS는 이중 담보 사기 의혹 속에 24억 파운드(4조20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남기고 파산했습니다. 작년 10월 시장을 흔든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 업체 트라이컬러와 자동차 부품사 퍼스트브랜즈 파산과 유사한 사건입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봤다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CEO의 말이 맞아떨어지는 모양새입니다.

블루아울, KKR, 아레스 등 사모시장 큰손들이 굴리는 사모신용 펀드에서도 대출 부실에 따른 배당 삭감, 자산 가치 하향, 대규모 환매 요구 등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날도 블랙스톤의 사모신용 펀드 BCRED가 전체 자산의 7.9%에 해당하는 38억 달러 규모 환매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임직원까지 나서 자산 매입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모신용 시장 전반에서 자금 유출과 구조적 균열 신호가 늘어나고 있다는 징후입니다.


사모펀드가 은행처럼 기업들에 직접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사모 신용은 공개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이나 상장 회사채와 달리 실시간 시장 가격이 없고, 외부 평가도 받지 않습니다. 초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했던 시절엔 부실이 드러날 일도 없었고 수익도 좋았지요. 기관은 물론 보험사와 개인 자금까지 몰리면서 시장이 1조8000억 달러 규모로 급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기 대출을 해놓고 투자자에겐 정기 환매를 허용하는 유동성 미스매치 구조 △투명성과 시장 신뢰가 부족한 한계점 등이 이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금리가 높아지고, 사모펀드들이 돈을 많이 빌려줬던 소프트웨어 회사들의 주가가 'AI 종말론'에 휘말려 급락하면서 자산 가치 하락, 대출 부실화, 신규 자금 유입 둔화 등 악재가 몰렸기 때문입니다. 금융위기 수준 부실 위험 VS 지나친 과장 UBS는 최악이 경우 사모신용 부실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1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스티브 아이스먼은 "이 수치가 현실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재앙적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젠 기관 투자자뿐 아니라 보험 가입자의 자금, 개인 투자자 자금, 퇴직연금(401k) 등이 이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만큼 부실이 발생하면 미국 경제 전체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사모크레딧과 사모펀드(PE) 등을 퇴직연금 상품에 편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골드만 그룹을 이끌었던 로이드 블랭크페인 전 골드만삭스 CEO도 "사모신용 시장 붕괴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위기가 터질 때마다 '시스템 전체 레버리지는 낮다'는 말이 반복되다 결국 숨겨진 위험이 한꺼번에 드러났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떠올리게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닷컴 버블을 예측했던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 회장도 같은 의견입니다. 그는 이날 블랙스톤 BCRED의 환매 사례를 두고 "시장은 기존 신념과 다른 새로운 정보를 거부하다 갑자기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고 했습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하트넷 전략가는 사모대출을 넘어 크레딧(신용) 시장 전반에서 충격의 선행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기업 선순위 대출(시니어론) ETF와 금융주 ETF가 장기 추세선 아래로 무너진 것이 그 근거입니다. 하트넷은 과거에도 그랬듯 크레딧이 먼저 하락하면 온전해 보이던 주식도 동반 하락할 위험이 높다고 경고했습니다.

물론 지난해부터 금융주가 많이 오른 만큼 지금의 하락은 단순 조정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블랙스톤의 존 그레이 회장은 대출 평가를 철저하게 하고 있으며 지금의 우려는 잡음에 불과하다고 일축했고, 아레스자산운용의 마이크 아루게티 CEO는 UBS의 15% 부도 시나리오가 과장됐다고 반박했습니다.

데이빗 솔로몬 골드만삭스 회장은 소수 사례에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전체 신용 시장의 문제는 아니라면서 "사모신용 펀드 포트폴리오 전반의 광범위한 악화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AI 종말론'과 사모대출 부실 우려에 휘말려 주가가 급락한 상장 사모대출 회사(BDC)들의 주식을 소로스 펀드 같은 기관들이 저가매수하고 있는 것도 위기론이 과장됐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향후 가능한 시장 시나리오 이제까지의 의견을 종합하면 향후 시장은 크게 네 가지 시나리오로 전개될 수 있습니다.
① 이란 리스크가 잦아들고 유가와 인플레이션 우려가 안정되면서 신용 위험과 AI 밸류에이션 부담도 방어되는 '연착륙' 그림입니다. 현재 월가에선 이를 가장 유력한 기본 시나리오로 보고 있습니다. 사모신용 시장 전반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지금의 Fed는 반드시 구제해줄 것(씨티)이란 믿음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② 두 번째는 경기가 과열되는 '리플레이션' 시나리오입니다. 완화적 재정·통화 정책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고 인플레이션으로 높은 부채 문제를 해결하려는 트럼프 경제팀의 구상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작년부터 강세론을 펼쳐온 모건스탠리의 윌슨 CIO나, 전설적 투자자인 스탠리 드러켄밀러가 이런 견해를 펼칩니다. 드러켄밀러는 주식을 매수하고 금·구리를 보유하면서 인플레이션 상승에 대비해 채권은 매도하는 포트폴리오를 제안했습니다.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③ 가능성은 낮지만, 월가가 우려하는 사모신용 시장의 부실 위기가 결국 현실화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사모 시장에서 AI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을 해온 많은 기업들의 돈줄이 좁아지면서 AI 버블 붕괴로 이어질 위험도 있습니다. ④ 마지막은 AI가 예상보다 빠르게 화이트칼라 대규모 실업을 초래해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 시장 붕괴를 부르는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입니다.

결국 앞으로 글로벌 시장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는 일회성 전쟁의 충격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의 궤적과 사모신용 시장에서 번지고 있는 부실의 불길이 될 전망입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