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전 세계 방송 매체들은 이란의 미사일을 맞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자이드 항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영상을 일제히 보도했다. 그 뒤편으로 루브르 아부다비와 자이드 국립박물관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이후 일대 박물관은 무기한 휴관에 돌입한 상태다.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미술관(MIA)와 카타르국립박물관도 이란 공격에 대비해 문을 닫았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바삐 현지를 오가던 미술 관계자들의 발걸음은 중동행 항공편 대부분이 중단되면서 뚝 끊겼다.
미국과 이란간 전쟁발발로 중동 전역이 전장(戰場)이 되면서 각국이 심혈을 기울려 추진하던 문화 산업 육성 프로젝트에도 암운이 드리웠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뉴스페이퍼에 따르면 UAE 두바이·아부다비, 카타르 도하를 비롯한 중동 미술관과 갤러리 중 상당수가 운영을 중단했다. 올해 개최가 예정돼 있던 프리즈 아부다비 등 주요 미술 행사들도 개최를 장담할 수 없는 상태다.
중동 미술 시장 급속 위축
연초만 해도 올해 중동 미술 시장의 도약은 기정사실에 가까웠다. 2월 아트바젤이 카타르에서 성공적으로 열린 데 이어 4월 중순에는 20주년을 맞는 아트 두바이, 11월에는 아부다비에서 처음 개최되는 프리즈 아트페어가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찬물을 끼얹었다. 아트 두바이는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정상 개최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해 11월 예정된 프리즈 아부다비는 대형 악재를 만났다. 설령 전쟁이 일찍 마무리되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으로 인한 물류 대란으로 인해 작품 운송비와 보험료 급등이 확실시된다. 국내 한 갤러리 대표는 “참가 신청을 고민하고 있었지만, 이번 전쟁으로 물류비용이 급증한 걸 보고 포기했다”고 말했다.
‘오일 머니’로 명작을 사들인 중동 컬렉터들조차 소장품을 고향 밖으로 보내고 있다. 미술 시장 분석기관 MoMAA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과 이스라엘의 전쟁 당시 스위스의 예술품 프리포트(관세 자유 보관 시설) 이용률이 전년 대비 267% 급증했다. 카타르 미술계 관계자는 “실물 작품을 런던이나 뉴욕 등 안전한 곳에 두고 소유권만 거래하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실추 '직격탄'…“회복 대비해야” 목소리도
문화산업에 수조 원을 들여온 중동 각국에 가장 뼈아픈 건 이미지 실추다. 두바이와 아부다비, 도하 등지의 고층 빌딩과 문화시설이 공격받으면서 애써 구축한 ‘안전한 금융·문화 허브’의 위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미술계 관계자는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이 시행되고 중국화가 진행되면서 갤러리와 아트 딜러들이 홍콩을 떠났던 것처럼, 중동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미술계와 자본은 떠날 수밖에 없다”며 “그 반사 이익은 영국 런던·스위스 바젤 등 전통적인 서구권 ‘미술 허브’에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중동의 막대한 투자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중동 국가들은 수십 조 원을 문화 인프라에 쏟아부은 상황이고, 석유가 마르기 전에 경제 구조를 다각화해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전후 복구 과정에서 국가 이미지를 재건하기 위해 투자 규모를 더욱 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카타르박물관청 관계자는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카타르는 20년 전부터 일관되게 문화 분야 투자를 진행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 이후 중동 문화계의 재건을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은 이미 중동 문화시장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디지털 아트 기업 디스트릭트는 두바이몰 '아르떼뮤지엄 두바이'에서 1년 만에 관람객 30만 명을 돌파했고, 카타르 정부 행사를 2년 연속 수주했다. 아트바젤 카타르에는 바라캇컨템포러리와 BB&M이 한국 갤러리로 참여했고, 학고재·이화익갤러리 등도 수년째 중동 아트페어에서 시장을 두드려왔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중동에 다시 문이 열릴 때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수영/이해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