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기 전에 얼른 주유하러 왔죠."
3일 오후,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인근 한 주유소 앞은 평소보다 더 붐볐다. 식당으로 향하던 차들 사이로 주유를 기다리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고, 주유소 진입로를 지나 끝 차선 도로까지 줄이 이어졌다. 주유기 앞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직원들은 쉴 새 없이 차량을 안내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시라도 빈 공간이 생기면 곧바로 다른 차량이 파고들었다.
이곳의 휘발유 가격은 ℓ당 1675원. 인근 지역에서 가장 저렴한 수준이다. 가격 안내판 아래로 차량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지금이 제일 싸다"는 말이 오가듯 운전자들의 발걸음은 주저함이 없었다.
이곳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오늘은 점심시간인데도 계속 차가 밀린다"며 "중동 사태 뉴스가 나온 뒤로 손님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차량을 안내하던 손짓을 멈추지 않은 채 "평소보다 체감상 확실히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군사작전 이후 중동 정세가 급격히 불안해지면서 국제 유가가 상승세를 보인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국내 기름값도 뒤따라 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지금이라도 넣어야 한다"는 심리가 빠르게 퍼졌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미리 채워두자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차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직장인 이모 씨(30)는 "연휴에 주유하려다가 기름이 좀 남아서 미뤘는데, 뉴스를 보니 무조건 오를 것 같아서 풀로 채우러 왔다"며 "친구는 연휴에 1600원대 초반에 넣었다는데 지금은 곧 1700원이다. 조금만 더 빨리 넣을 걸 싶지만 그래도 지금이라도 넣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셀프 주유를 하던 주부 한모 씨(56)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기름값이 오를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실제로 오르더라"며 "마침 기름이 거의 떨어져서 왔다. 지금이 제일 쌀 것 같아서 채웠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제 유가가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통상 며칠에서 2~3주가량의 시차가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체감 속도가 더 빠르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당장 내일부터 인상분이 반영된다"는 말이 돌고 있다. 실제 인상 시점과는 별개로, 이런 소문 자체가 소비자들의 행동을 앞당기고 있는 셈이다.
중동 지역 긴장이 확산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 유가가 출렁이고, 그 여파가 수도권 주유소 풍경에도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이다.
강남 일대 직장인 밀집 지역의 주유소에는 점심을 전후해 차량이 몰렸다. ℓ당 1790원대에 판매 중인 강남구의 한 주유소 운영자 B씨는 "연휴 동안 주유를 못 한 사람들과 법인 차량 위주로 오늘 많이 찾았다"며 "다들 '쌀 때 넣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는 "아침 출근길에도 평소보다 많이 들렀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광명에서 ℓ당 1678원에 판매하는 주유소를 운영하는 또 다른 A씨 역시 "내일부터 오른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오늘 손님이 확 늘었다"며 "조금이라도 저렴할 때 주유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을 막론하고 '선주유' 현상이 나타나는 분위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다. "100km 정도 남았지만 일단 넣었다", "퇴근하고 바로 주유소 갈 것", "아침부터 줄 서 있더라"는 글이 잇따랐다. 가격 상승에 대한 불안이 댓글과 게시글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수치도 오름세를 보여준다. 이날 오전 한국석유공사 유가 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771.98원으로 지난달 28일(1750원)보다 약 22원 올랐다. 전국 평균 역시 ℓ당 1693원에서 1704.38원으로 상승했다. 전날과 비교하면 서울은 3.6%, 전국은 2.4% 오른 수치다. 경유도 서울 평균 ℓ당 1684.86원, 전국 평균 1609.72원으로 각각 3.4%, 2.3% 상승했다.
유지희 한경닷컴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