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대형 공연장 미디어 시티 앰피시어터에서 열린 ‘크레이지 슈퍼콘서트’에는 지드래곤, 박재범 등 K팝 가수들이 대거 등장했다. 관객석은 이들을 보러 온 현지 관중 2만여 명으로 꽉 찼다. 빌보드·포브스와 현지 매체들은 “중동이 K팝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집중 보도했다.
최근 현지에서 할랄 인증을 받은 ‘신라면’ ‘불닭볶음면’ 등이 유행하자 농심과 삼양식품도 올해 중동 수출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CJ ENM은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에 첫 중동 법인을 세웠고, 인디 화장품 브랜드들도 현지 플랫폼 입점에 속도를 내던 참이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은 중동을 ‘기회의 땅’으로 삼은 기업들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란을 둘러싼 중동 정세가 전면전 양상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지난해 달성한 ‘K푸드·뷰티 중동 수출 1조원’은 위태로워졌다. 지난해 중동에 수출한 식품 규모는 전년보다 22.6% 증가한 4억1000만달러(약 6014억원)를 기록했다. 지난해 중동 7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4억618만달러(약 5958억원)에 달했다.
중동 전쟁 확전은 현지 스마트폰·TV·가전 시장을 공략하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 기업에도 타격을 줄 전망이다. 삼성전자의 중동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34%(2025년 3분기 기준)로 1위다. 중동 TV와 가전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의 합산 점유율은 50% 이상으로 프리미엄 제품군에서 시장 지배력을 높이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 현지 법인의 수익성도 악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에서 판매량을 확대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의 질주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현대차·기아의 중동 판매량은 2020년 26만9000대에서 지난해 40만8000대로 5년 만에 52% 급증했다. 중동 최대 자동차 시장인 사우디에서 현대차·기아 점유율은 23.7%로 1위인 도요타(28.6%)를 바짝 뒤쫓고 있다.
중소기업 수출 1위 품목인 중고차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고차 수출액은 90억달러로 전년 대비 76.3% 급증했다. UAE를 중심으로 한 중동 수출이 전년보다 58.6% 증가한 영향이다. 전쟁과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충격은 중동을 넘어 확산할 수 있다. 중고차 수출 증가분의 상당수는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등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를 경유해 러시아로 흘러 들어가는데, 지정학적 긴장이 확대되면 물류 및 결제 리스크가 동시에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항공사도 유가 상승에 따른 직격타를 맞게 됐다. 항공유는 항공사 전체 비용의 약 30%를 차지할 만큼 수익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중동행 하늘길이 막힌 것도 악재다.
문화·공연업계의 근심도 깊어졌다. 이란 자체는 K팝 콘서트가 활발히 열리는 곳이 아니지만, 사우디 UAE 등 인접국에선 최근 대형 공연이 잇따랐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지나치게 화려하고 즐거운 분위기의 홍보는 자제해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선아/황정환/허세민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