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관훈클럽이 마련한 행사에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고령의 전직 장관 한 분이 유 관장에게 덕담을 건넸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알려면 국가 최고 박물관 관장이 누구인지 봐야 한다. 그 점에서 한국은 유 관장 덕분에 이제야 어디 가서 명함 좀 내밀 수 있게 됐다.”
1949년생인 유 관장의 공훈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은 꾸준한 글쓰기다. 영남대 교수 시절 첫 권을 내놓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0권을 포함해 45년간 45권을 펴냈다. 1년에 한 권씩 저서를 낸 셈이다. 하지만 그가 저술 공로로 받은 상 중 첫손에 꼽는 것은 대구경북(TK) 지역 민간 부문 최고 권위 문화상인 금복문화상 정도다. ‘TK 출신이 아니면서 TK 긍지를 높였다’는 점이 높이 평가받았다고 한다. 척박한 韓 지식 토양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유 관장은 희귀한 사례로 꼽힌다. 따를 후학이 다시 나오기 힘들다는 점에서다. 그는 문화유산 전도사로 왕성하게 활동하며 인세와 강연료 등으로 135억원을 재산으로 신고했다. 이것만 보고 유 관장 뒤를 좇으려는 학자가 많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논문 쓰랴, 정부 예산 받아내랴, 소위 일류 대학 교수조차 업무 평가와 무관한 일에 시간을 할애하기란 불가능하다. 오죽했으면 서울대, KAIST 공대 교수 사이에서 “교과서를 집필하는 것도 교수 평가와 무관한데 누가 대중서를 쓰겠냐”는 말이 나올까.
이와 비슷한 현상이 다른 선진국에서도 벌어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미국, 유럽만 해도 <사피언스> <총, 균, 쇠> 같은 과학 명저가 쏟아져 나온다. 한국 문화유산과 미술에 꽂힌 이 땅의 젊은 학도들은 그나마 유홍준이라는 ‘지식의 등대’를 좇을 수 있었지만 과학자·공학자를 꿈꾸는 청년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서양 ‘대중서’를 보며 꿈을 키운다. 한국판 퓰리처상 만든다면일명 ‘개미 박사’로 불리는 통섭의 생태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대중을 위한 전문서’를 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그의 지도교수이던 에드워드 윌슨 사례를 들어 말했다. 사회생물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정립한 대학자인 동시에 매년 대중 과학서를 꾸준히 발간하는 과학 논픽션 작가인 윌슨 교수는 ‘문학적 글쓰기’를 위해 가정교사를 옆에 두고 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과학을 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소신이 그런 열정을 낳았다.
많은 이가 한국 사회의 의대 광풍에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미국에서도 1990년대 초까지 의대가 공대보다 인기가 많았다. 애플, 구글, 테슬라 같은 빅테크가 등장하면서 그 고리를 끊었다. 우리도 이공계 진학을 권장하기 위해 빅테크에 준하는 연봉을 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연봉만으로 청년의 꿈에 불을 지필 수는 없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 탐사라는 꿈을 꾸도록 만든 건 유년 시절 읽은 공상과학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다. 이참에 우리도 ‘한국판 퓰리처상’을 만들면 어떨까. 당장 교수에게 논문을 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금이나마 다른 쪽으로 열정을 돌릴 수 있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연봉은 직업 선택의 ‘넛지’일 뿐이다. 세대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스토리와 영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