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온라인 패션 플랫폼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과거처럼 특정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만으로 연 매출 1000억원을 넘기는 대형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영향이다. 패션 플랫폼 간 경쟁 축이 단순한 중개 수수료 싸움을 넘어 누가 더 강력한 자체 브랜드와 오프라인 매장을 확보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온라인 중개 모델에만 의존하는 사업 방식은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 ◇ “대박 나도 200억원”3일 유통·패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패션 시장 거래액은 37조4030억원으로 전년보다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연도별 거래액 증가율은 코로나 사태 직후인 2020년과 2021년에는 10%를 훌쩍 넘었으나 2023년 4.3%로 확연히 둔화했다. 2024년 거래액은 36조9265억원으로 전년 대비 감소하며 사상 첫 역성장(-1.1%)을 기록했다.
성장 정체의 가장 큰 원인은 시장을 이끌 ‘스타 브랜드’의 부재다. 과거 패션 플랫폼은 히트 브랜드를 배출하며 함께 성장했다. 무신사의 ‘커버낫’이 대표적이다. 커버낫은 입점 초기 소형 인디 브랜드에 불과했지만, 무신사의 지원을 받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1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500억원을 웃도는 등 ‘메가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디스이즈네버댓’ ‘마르디 메크르디’ 등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지그재그의 ‘아뜨랑스’ W컨셉의 ‘앤더슨벨’ 등도 스타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최근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메가 브랜드의 계보가 뚝 끊겼다. 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 관계자는 “요즘은 1000억원은커녕 500억원을 넘기는 브랜드도 없다”며 “잘 되는 브랜드 대다수가 연 매출 100억~200억원 수준에 갇혀 있다”고 했다. 신흥 인디 브랜드(소규모 독립 브랜드)가 너무 많아졌고 패션 플랫폼도 계속 늘어 수요가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특정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만으로도 매출이 확 뛰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품질과 가격을 비교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고 취향이 파편화하면서 브랜드 충성도가 예전만 못하다”고 진단했다.
플랫폼의 수익 구조도 악화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은 제품 판매 시 약 25~30%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데, 이 수수료를 고스란히 쿠폰 할인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규 브랜드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여력이 줄었다. 실제 에이블리는 2024년 매출 3342억원을 올리고도 154억원의 영업 적자를 냈다.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광고 선전비를 늘린 탓에 수익성이 나빠졌다. W컨셉의 2024년 매출은 1169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0% 감소했다. 카카오스타일은 지난해 매출 2004억원을 기록하며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으나 이익률은 1% 수준에 그쳤다. ◇ “자사몰 위주로 재편될 듯”플랫폼업체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PB)와 오프라인 매장이다. 무신사는 ‘무신사 스탠다드’ ‘무신사 스토어’ 오프라인 매장을 전국으로 확장하고 있다. 남의 브랜드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넘어 직접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는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사업을 키우고 있다. 하고하우스의 변화는 더 극적이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 치중하던 과거를 버리고 현재 마뗑킴·드파운드 등 40여 개의 유망 브랜드를 보유한 브랜드 인큐베이팅 기업으로 거듭났다. 2021년 인수 당시 1곳뿐이던 마뗑킴 매장은 3년 반 만에 170곳으로 늘었다.
패션업계에선 향후 플랫폼 시장이 미국처럼 D2C(소비자 직접 판매) 위주로 재편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여러 브랜드를 모아 파는 플랫폼 시대가 저물고 강력한 자기 브랜드를 갖춘 브랜드 하우스가 시장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