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에서 ‘이머시브(Immersive) 연극’ 열풍을 일으킨 <슬립 노 모어>가 서울에서 인기리에 공연 중이다. 이머시브 연극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없는 공간에서 관객이 주도적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참여형 공연을 의미한다. 전통적인 극장 환경과 대사 중심의 전달 방식을 탈피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이 실험적인 형식은 전 세계 공연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필자도 이머시브 연극 관람은 처음이었다. 공연에서 어떤 장면이, 아니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 여느 때와 달리 생경한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했다.
가면이 선사한 익명성, 그리고 은밀한 자유
일제강점기인 1939년 완공된 ‘매키탄 호텔’로 꾸며진 6층 규모의 거대한 공연장은 히치콕의 필름 누아르 세계에 들어온 듯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곳에서 관객은 연회색 가면을 쓴 채 ‘유령’ 같은 존재가 된다. 휴대폰 사용이 통제되고 어떤 말소리도 허용되지 않는 침묵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감각에 의존해 배우를 쫓아야 한다. 정해진 플롯은 없다. 내가 가는 길,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곧 공연의 전부가 된다.
가면 덕분에 얻은 익명성은 그동안 공연장에서 맛보지 못했던 해방감을 선사했다. 응접실, 침실, 식당, 예배당 등 다양한 콘셉트의 호텔 방을 홀로 누비며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 너머를 상상하다 보니, 마치 타인의 은밀한 사생활을 훔쳐보는 듯한 묘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벼룩시장이나 앤티크 숍에서 공수했을 법한 가구와 소품들은 디테일까지 완벽했다. 박제된 동물들, 낡은 책과 손편지 하나하나가 이곳은 ‘가짜’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연출자가 이 ‘진짜’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쏟아부은 공력에 압도당하며 나도 자연스럽게 매키탄 호텔의 환상에 빠져들었다.
코앞에서 마주한 전율, 혹은 파편화된 서사
배우들은 각기 다른 방에서 대사 없이 소품들을 온몸으로 활용하며 감정을 쏟애냈다. 유령처럼 서성이는 관객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격렬한 안무를 소화하며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배우의 거친 숨소리와 미세한 안면 근육의 떨림까지 코앞에서 마주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른 한편, 호텔 문을 나서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직접 연출자가 되어 나만의 공연을 자유롭게 만들어가는 작업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때때로 수십 명의 유령 틈을 비집고 배우를 뒤쫓는 과정은 고된 달리기 시합 같았다. 인파에 밀려 뒤처지기도 했다. 배우를 쫓다 앞서가던 관객 중 한 명이 배우의 선택을 받아 밀실로 사라지면,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허탈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다. 내가 체험한 장면들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어 그 안에서 온전한 서사를 건져 올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3시간가량 호텔을 누볐음에도 원작의 하이라이트인 맥베스가 왕을 살해하는 장면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다만, 맥베스가 스스로를 경멸하는 듯 회한에 가득 찬 표정으로 욕조에서 피를 씻는 몸짓을 보며 조금 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살해하고 왔음을 상상할 수 있었다. 193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배우가 뒤섞여 연기하는 맥락 또한 선명하게 와닿지 않았다.
n차 관람을 부르는 갈증의 미학
하지만 이야말로 이머시브 연극의 진정한 매력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다른 누군가는 내가 본 장면을 보지 못했을 수 있다. 연출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관객 제각각의 체험 모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야기의 남은 조각을 더 채우지 못한 아쉬움이 커질수록 다시 공연장을 찾고 싶다는 ‘n차 관람’의 욕구도 커졌다. 다시 보는 공연은 이전과는 또 다른,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나도 다음에는 더 적극적으로 배우들과 호흡하며 새로운 맛을 즐길 수 있을까? 한 번 더 보면 더 매력적인 나만의 맥베스를 연출해낼 수 있을까? 아쉬움은 어느새 물음표로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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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준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