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휘황찬란한 권력으로 내려쓰자…매국노 이완용은 명필로 불렸다

입력 2026-03-06 17:25
수정 2026-03-06 23:43
이완용은 매국노의 대명사다. 그런데 문화예술계에서는 “글씨만큼은 좋았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당대에는 그의 글씨를 받으려고 사방에서 보낸 비단과 종이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일본 다이쇼 일왕이 조선총독을 통해 글씨를 보내라고 요구했을 정도의 명필이었다는 설명이 따라붙는다. 그런데 정말일까. ‘글씨는 쓰는 이의 인품을 드러낸다’는 상식과는 영 맞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강민경이 쓴 <나는 이완용의 글씨가 궁금했다>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이완용이 즐겨 쓴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꼼꼼히 뜯어본다. 당나라 명필 안진경의 서체를 따랐고, 글자를 배치하고 먹을 다루는 솜씨도 능숙했다. 하지만 같은 글씨를 쓴 작품들의 배치와 획의 움직임이 판박이다. 독창성이 없다는 얘기다. 근대 서화의 권위자였던 오세창도 이완용의 글씨에 대해 별다른 호평을 한 적이 없다. 저자는 “이완용을 명필로 만든 건 글씨 자체가 아니라 ‘조선 귀족 영수 후작 각하’라는 권력이었다”고 결론내린다. 이완용의 글씨 자체가 권력의 증표였기 때문에 글씨가 좋다는 평가가 뒤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독립문 편액을 이완용이 썼다”는 통설도 파고든다. 이완용의 행적을 담은 기록들을 근거로 “관련 언급이 전혀 없어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다만 독립운동가 김가진이 썼다는 설도 증거가 부족하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두 사람이 쓴 <천자문>에서 ‘독립문’ 석 자를 뽑아 필획을 비교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책은 이완용 개인에서 출발해 근대 서화계 전체를 조감한다. 경성서화미술원과 서화미술회, 서화협회 등 초기 미술단체 창설에 이완용이 깊이 관여한 사실을 비롯해 조선미술전람회 서부 심사위원을 네 차례나 맡은 이력, 김은호·이병희 등이 그에게 글씨를 배운 내력까지 추적한다. 저자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한 이완용의 친필 일기 <일당선고일기>는 학계에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사료다.

“무를 캐는 이유는 뿌리에만 있지 않다.” 주변 사람들이 “섣불리 이완용 책을 썼다가는 다칠 수 있다”고 만류하자 저자가 인용한 <시경> 구절로, 썩은 뿌리는 버리되 무청으로 시래기를 만들면 쓸 만하다는 뜻이다. 그 말대로 매국노의 붓끝을 통해 근대 한국 미술의 지형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