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있어도 까불면 다쳐" 트럼프 FAFO에 김정은 '셈법 복잡'

입력 2026-03-02 18:58
수정 2026-03-02 19:24



지난 2월 28일, 이란 테헤란 상공을 가른 미국의 전격적인 공습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단순한 우방의 비보를 넘어선 실존적 위협으로 다가온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이 축출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이란 지도부가 붕괴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반미 성향 우방국 지도부가 잇따라 붕괴하는 모습을 보며 김 위원장이 체제 안전과 협상 전략을 둘러싸고 한층 신중한 접근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핵 있어도' 까불면 다친다" 직접 확인...하메네이 다음은?

그간 북한은 핵 능력 고도화가 미국의 군사 작전을 억제하는 유일한 방패라고 믿어왔다. 지난 1월 마두로 축출 당시만 해도 핵무기가 없는 베네수엘라는 자신들과 다르다는 판단하에 '핵 무력 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당시 북한은 사태 발생 만 하루 만에 외무성 대변인의 기자 문답 형식을 통해 "미국의 불량배적이며 야수적인 본성을 확인했다"며 비난의 수위를 조절했다. 성명이나 담화보다 격이 낮은 답변 형식을 취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비난하지 않는 등 상황 관리에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핵 개발 막바지 단계에 있던 이란의 지도부 40여 명이 작전명 '장대한 분노(Epic Fury)' 아래 한꺼번에 제거되자 분위기는 급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두로 체포 당일 내건 'FAFO(까불면 대가를 치른다)'라는 경고가 핵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핵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수뇌부 참수라는 최극단 조치도 불사한다는 기조를 보이면서 김 위원장의 '핵 억제력' 신화는 근본적인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침묵의 담화 속 숨겨진 공포…흔들리는 체제 단속


북한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조심스럽다. 지난 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불법 무도한 침략 행위"라고 규탄했으나, 정작 하메네이의 사망 사실은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이는 최고지도자가 미국의 군사력에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내부에 공개될 경우 초래될 체제 균열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비난하지 않은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상대를 자극했다가는 다음 타격 지점이 평양의 집무실이 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란의 비극을 통해 핵 무력에 대한 집착은 커졌으나, 역설적으로 미국을 자극하는 도발의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어설픈 협상은 정권 붕괴"…트럼프-시진핑 베이징 회동 딜레마


외교가의 시선이 이달 말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쏠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시 주석과의 회담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의 만남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음을 시사해 왔다.

다만 이 같은 구상이 실제로 성사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강경화 주미대사는 지난 24일 특파원들과 만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4월 방중 계기에 북미대화 가능성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1월 20일 노동당 9차 당대회 보고에서 "미국이 우리 국가의 현 지위(핵보유국)를 존중하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한다면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나름의 조건을 내건 바 있다.

그러나 이란 사태 이후 미국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기보다 '핵 위협 제거'를 명분으로 군사적 타격에 나설 가능성이 입증되면서 김 위원장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 군사적 공격을 가할 수 있다는 인식이 더욱 굳어졌을 것"이라며 "어설프게 협상에 나왔다가는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해 협상 자체를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당분간 '핵보유국 인정' 같은 과도한 요구를 자제하며 상황 관리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을 자극해 공격의 명분을 주기보다는, 일단 대화의 여지를 열어두는 방식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피하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