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과 검찰청은 최근 몇 달간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두 축을 뒤흔드는 ‘개혁’의 태풍이 몰아치면서다. 여당은 병오년(丙午年) 적토마와 같은 기세로 수십 년을 이어온 사법제도의 틀을 입법을 통해 뜯어고치는 데 성공했다.
2030년이 되면 대법관 수는 지금의 두 배를 넘는 26명이 된다. 대법원 판결 사건은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된다. 시대 변화에 따라 법리를 변경하고, 하급심 판례를 뒤집는 대법관은 법을 왜곡 적용했다는 이유로 수사 대상이 될 수도 있다.
1948년 제헌헌법에서 명문화된 ‘3심제’는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대법원 판결은 점차 힘을 잃고, 판·검사를 상대로 한 고소·고발장이 빗발칠지 모른다. 이들이 ‘법 왜곡’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다면 가뜩이나 특별검사팀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각급 법원 형사재판부 법관들에게 유죄 판단의 책임이 지워진다.
이렇게 형사 하급심 업무 부담은 가중되는데, 늘어날 대법관 12명을 보좌할 재판연구관 100여 명까지 차출해야 할 판이다. 대법관 증원 여파로 고질적인 하급심 재판 지연의 해소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게 법원의 시각이다.
재판소원을 둘러싼 사법부와 헌재 간 이견도 좁혀질 기미가 없다. 법원은 재판소원이 헌재에 대법원 판결을 취소할 권한을 부여해 초(超)상고심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같은 논리로 1997년부터 30년째 헌재 재량으로 행해진 ‘한정위헌’의 효력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재판소원은 곧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으로, 사실상 헌재의 지위를 대법원보다 상위로 올려놓은 셈이다. 한 해 수천~수만 건에 이를 수 있는 재판소원 사건에 따른 과부하를 헌재가 아니라 대법원이 걱정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이유다. 업무 부담이 커질 헌재는 되레 심판비용 징수, 남소과징금 부과 등 사건 폭증을 막을 방법이 있다고 맞선다.
법원 스스로도 현 상황을 어느 정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도 80년 가까이 유지돼 온 사법제도를,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판단한 이후 10개월 만에 뜯어고친 데서 오는 ‘졸속 입법’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의도를 오가는 판·검사들은 “의원실에서 소통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큰 틀의 총론은 확정됐으니 각론 단계에선 서초동에도 곁을 좀 내어주면 어떨까. 유례없는 강도의 사법개혁이 초래할 부작용과 그에 따른 국민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함께 찾는 일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