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현의 시각] 가보지 않은 길 '노봉로 310'

입력 2026-03-01 17:11
수정 2026-03-02 00:11
그 이름도 따뜻한 ‘노란봉투법’, 하지만 이름과 달리 논란을 거듭해온 개정 노동조합법이 이달 10일부터 시행된다. 법 시행이 불과 열흘도 남지 않았지만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지난해 8월 입법에 이어 두 차례에 걸쳐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노동계는 노동계대로, 경영계는 경영계대로 손사래를 치고 있다.

논란의 노동정책 실험은 또 있다. 이름하여 ‘근로자 추정제’. 일하는 모든 사람을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이를 부정하려면 노무수령자(사용자)가 입증해야 하는 제도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조차 “우리 입법과 비슷한 수준의 선례는 찾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실험적인 제도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렇다 할 토론이나 공론화 과정도 없이 올 5월 입법을 공언하고 있다. 두 개의 입법이 노동시장에 몰고올 후폭풍은 명약관화하다. 마치 대한민국이 글로벌 노사관계 이슈에서 거대한 실험실을 자처하는 형국이다. 글로벌 노사관계 실험실 된 한국어찌 됐든 오는 10일이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노란봉투법길 310’이 열린다. 입법예고에 재입법예고까지 두 차례에 걸친 시행령 개정과 의견 수렴에도 노동계는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을 제한하는 창구단일화 제도 자체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실질적 지배, 구조적 통제 등 교섭의무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이런 논란을 의식해 원·하청 간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를 꾸려 혼란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판단지원위는 노동계와 경영계로부터 추천을 받아 조만간 공개될 예정이다. 법 시행도 되기 전에 하청 노조의 원청을 상대로 한 교섭 요구는 이미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봇물 터지듯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문가 판단지원위 설치는 속수무책 정부의 궁여지책일 것이다. 하지만 이름에서 보듯이 판단지원위는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원’ 위원회일 뿐이고, 게다가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노동법 전문가들이라고 하더라도 고작 10명 안쪽의 사람들이 며칠 만에 뚝딱 정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결국 건건이 노동위원회를 거치는 갈등 끝에 법원에서 결론 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법 성공 여부 원청 노조에 달려노란봉투법을 둘러싼 수많은 논란 중에는 신기하리만큼 아무도 언급하지 않는 불편한 진실도 있다. 원청 노조 이야기다. 원청 기업과 하청 노조 간 교섭 테이블이 차려졌다는 것은 해당 안건이 산업안전이 됐든 성과급이 됐든 하청 노조에 대한 원청기업의 지원(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원청 기업 노조는 이런 상황을 뜨거운 동지의식으로 순순히 받아들일까. 지난달 27일 고용노동부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는 교섭단위 창구단일화 대상이 아니라고 발표했지만, 원청 기업이 협상의 결과로 원청이든 하청이든 노조에 내놓을 파이는 같은 오븐에 들어 있다. 하늘에서 뭉칫돈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결국 파이 배분의 문제다. 이처럼 원청 노조는 하청 노조 못지않게 노란봉투법의 핵심 이해당사자인데, 너무나 조용한 것은 아직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아서일까.

어쨌거나 일은 벌어졌고, 판은 펼쳐졌다. 원청 기업과 하청 기업, 원청 기업과 하청 노조, 특히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 간 상생과 양보로 선한 입법 취지가 결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