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습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하면서 중동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이란의 핵심 우방을 자처해온 중국의 반응은 절제돼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번 군사 작전은 중국 시간으로 2월 28일 오후 시작됐으며, 1일 오전 하메네이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이날 오전까지 별도 공식 논평을 내지 않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간) "군사 행동 중단"과 "영토 보전 존중"을 언급한 이후 입장 표명을 자제하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15억 배럴 방패' 전시 수준의 공격적 비축…운임 폭등에도 흔들림 최소화
베이징의 신중한 태도는 에너지 안보라는 현실적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수입 원유의 약 30~35%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여온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 해협이 봉쇄될 경우 중국 경제는 곧바로 공급 차질과 가격 폭등이라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영국 클락슨리서치와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중동-중국 노선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하루 평균 운임은 약 17만6000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는 연초 대비 4~5배 급등한 수준이다.
전쟁 리스크가 해상 운임과 보험료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중국의 제조 원가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이에 대비해 사실상 '보험용' 비축 전략을 강화해 왔다.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 이후 하루 평균 90만~100만 배럴을 상업 및 전략 비축용으로 추가 매입해 왔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2026년 1분기까지 약 1억 4000만 배럴을 추가 확보하라는 내부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유가가 상대적으로 낮을 때 물량을 확보해 위기 시 완충재로 쓰겠다는 전형적인 '보험' 성격의 대응이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에너지 에스펙트와 원유 데이터 업체 케이플러는 중국의 총 원유 저장 용량을 약 15억~20억 배럴로 추정한다.
2026년 초 기준 실제 저장량은 15억 배럴을 넘어선 것으로 관측된다. 순수입이 중단될 경우 약 120~140일을 버틸 수 있는 규모로, IEA 권고치인 90일을 상회한다는 분석이다.
일부 분석에 따르면 실제 저장 능력이 15억 배럴을 넘어 20억 배럴에 근접할 경우,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자 동시에 최대 비축 보유국 중 하나로서 국제 유가와 물동량 흐름에 구조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중국 정부가 전략비축유(SPR)의 정확한 규모를 공식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이러한 외부 수치는 추정치에 해당한다.
저장 인프라도 확충 중이다. 시노펙과 CNOOC 등 국영 에너지 기업들은 11개 거점에서 총 1억6900만 배럴 규모의 저장 시설을 추가 건설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더해 중국 상무부는 2025년 석유제품 수출 쿼터를 동결하거나 축소하며 내수 우선 기조를 유지했다.
외부로 내보내기보다 내부 저장고를 채우는 방향이다. 중동 리스크 장기화에 대비해 단기 충격을 흡수하고 협상력을 유지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신중 모드는 3월 31일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일정과도 맞물려 있다는 관측이다.
통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란 변수에 과도하게 개입해 협상 환경을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이 비축유를 방출해 충격을 완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공급선 다각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브라질산 원유 수입 비중은 7.91%로 전년(6.73%) 대비 상승했다.
최근 시진핑 주석이 캐나다 마크 카니 총리를 만나 에너지 파트너십을 논의한 것도 이란·베네수엘라 의존도를 낮추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확보하는 동시에 브라질, 캐나다 등으로 공급선을 넓히며 리스크를 분산하고 있는 것이다.
中이 쌓은 공든탑 '일대일로' 비상, '포스트 하메네이' 변수 촉각
이번 이란 사태는 중국의 대외 확장 전략인 일대일로(BRI)에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란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육상 실크로드와 중동·아프리카로 연결되는 해상 루트의 요충지다.
동시에 중동 내 주요 투자 대상국으로, 에너지·철도·항만·통신 인프라 등 수십억 달러가 투입됐다.
특히 이란은 중국의 '서진(西進) 전략'의 핵심 축으로 평가돼 왔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견제 구도 속에서 서쪽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는 교두보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사망으로 권력 구도가 불안정해지면, 그간 투입된 막대한 에너지·인프라 자산이 정책 변화나 정세 불안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미·중으로 나뉘어 있던 에너지 블록화 구조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중국은 서방 제재를 우회하며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배럴당 약 9달러 수준의 '헐값 원유'를 확보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베네수엘라 유전을 관리하며 과거보다 30% 높은 가격으로 유통을 시작하면서, 저가 독점 구조는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과 협력을 확대하며 중동 내 파트너를 다변화해 리스크를 분산시켜 왔다.
그럼에도 지정학적 위치와 반미 성향으로 인해 이란은 여전히 상징적·전략적 가치가 컸다. 전문가들은 이란 변수가 확대될 경우 일대일로 중동 축의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중국 내부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관영 환구시보 총편집인을 지낸 논객 후시진은 하메네이 사망 직후 “이란 지도부 내부에 안전한 인물은 없다”며 정보력 실패를 꼬집었다.
이는 중국이 패배가 예견된 정권에 무리하게 베팅하지 않겠다는 기류를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