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마케팅이나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전세계 여행객들이 꿈의 리조트로 꼽는 브랜드가 있다. 글로벌 럭셔리 리조트 '아만'(AMAN)은 여행의 목적지를 도시가 아닌, '아만' 그 자체로 격상시킨 브랜드다. 브랜드는 하나의 커뮤니티처럼 확장되고,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여행 계획을 또 다시 다른 아만 중심으로 설계한다. 아만의 리조트만을 찾아다니는 여행객들을 부르는 '아만 정키'(Aman Junkie)라는 말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다.
수년간 직접 경험해 온 아만에는 차원이 다른 특별함이 있다. 체크인을 하는 순간, 호텔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들어가며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분명 같은 24시간인데, 이곳에서는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것 같다. 급하게 확인하던 메시지도, 계속 울리던 알림도 도착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손에서 멀어진다.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은 비어 있지 않고, 오히려 더 깊이 채워진다. 왜 아만( AMAN)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 답은 공간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만이라는 브랜드가 시간을 설계하는 방식 속에 있다. 한 사람의 집에서 시작된 호텔
아만은 1988년 푸켓의 아만푸리(Amanpuri)에서 시작됐다. 창립자 아드리안 제카는 호텔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머물 조용한 별장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전통적인 호텔리어가 아니라 저널리스트 출신이었다. 아시아의 문화와 사람들을 기록하며 스토리와 디테일을 바라보는 시선을 먼저 배운 사람이었다.
공간을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와 감각을 담는 매체처럼 바라보는 시선. 이것이 훗날 아만의 철학이 된다. 푸켓에서 발견한 한 땅이 혼자만 머물기에는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고, 그 공간을 소수와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아만푸리로 이어졌다. 객실 수 약 40개의 작은 리조트. 리조트라기보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한 듯한 경험이었다. 화려함보다 고요함, 과시보다 평온함, 건축적 과장보다 자연과의 조화. 이 선택은 훗날 아만이 만들어낼 새로운 럭셔리의 정의가 된다.
아만의 철학은, 이름 그대로 평화다. 이곳은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라 집을 떠나 또 다른 집에 머무는 감각(home away from home)에 가깝다. 그래서 아만은 호텔이라기보다 나의 별장이나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진다. 공간은 과하게 연출되지 않고 실제 거주 공간처럼 따뜻한 스케일과 동선을 가지고 있으며 하드웨어 역시 집 같은 안정감을 우선한다.
스태프들은 정중하지만 과하지 않은 태도로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투숙객의 이름을 기억하고 먼저 불러준다. 고요함과 여백을 중심으로 한 설계, 자연과 문화 속으로 녹아드는 건축, 요청을 기다리기보다 먼저 알아채는 개인적인 서비스. 이 모든 선택은 특별함보다 편안함을 위한 것이다. 아만 투어, 시간의 질감을 느끼다
◆아만 베니스(Aman Venice)
보트를 타고 도착한 아만베니스는 호텔이라기보다 수백 년 전으로 돌아가 오래된 귀족 저택에 초대받은 듯한 경험이었다. 프레스코가 남아 있는 천장과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벽, 과하게 정리되지 않은 고요한 공기. 이미 존재하던 시간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공간이었다.
프라이빗 보트를 타고 팔라초에 들어오는 순간 도시의 소음은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그랜드 캐널을 바라보며 즐기는 조식과 디너는 하루의 시간을 완전히 다른 속도로 바꿔놓는다. 밤이 되어 투숙객만 남은 팔라초에는 더욱 깊은 정적이 내려앉고, 작은 바와 살롱에서는 느린 대화와 음악이 이어지며 공간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만 킬라(Amankila)
발리의 아만 킬라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시간이 느려진다. 도심에서 약 두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들어가야 도착하는 이 리조트 주변에는 다른 리조트나 상업 시설이 거의 없다. 대신 언덕과 바다 사이에 자리한 리조트 자체가 하나의 작은 빌리지처럼 느껴진다.
계단식 수영장과 바다, 그리고 바람과 파도 소리만 남는 오후 속에서 시간은 흘러가기보다 조용히 퍼지는 감각에 가깝다. 리조트에서 제공되는 액티비티와 서비스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깊어지고, 오히려 사흘이 짧게 느껴질 만큼 공간 안에서의 시간이 밀도 있게 쌓인다.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떤 감정으로 머물렀는지가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공간이었다.
◆아만사라(Amansara)
앙코르 와트가 있는 캄보디아의 아만사라서는 훨씬 오래된 시간의 흐름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여행이기도 했다. 비행기를 여러 번 갈아타는 긴 이동 시간을 거쳐야 하지만, 그 덕에 도착하는 순간 공간의 고요함이 더욱 깊게 느껴진다. 앙코르 유적지의 정글과 사원, 그리고 수백 년의 기억이 겹쳐진 공간 속에서의 하루는 시간의 층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경험이 된다.
필자가 체험한 세 곳의 아만은 서로 다른 풍경을 가지고 있었지만 느끼는 감정은 비슷했다.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이었다는 기억 말이다. 특별한 이벤트나 강렬한 활동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던 오후, 조용히 이어지던 서비스,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이 더 깊게 남는다. 작게, 머무르는 브랜드의 철학여행객들이 느끼는 편안함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아이덴티티에서 비롯된다. 브랜드로서의 아만은 성장의 속도보다 경험의 밀도를 선택해왔다. 그 철학은 세 가지 방식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①적은 객실 수, 밀도 높은 서비스
대부분 리조트가 20~40개 객실 규모로 설계된다. 그 이유는 희소성이 아니라 관계의 깊이를 만들기 위해서다. 객실이 적기 때문에 직원은 투숙객의 이름을 기억하고 필요를 묻기 전에 먼저 알아차린다. 서비스는 요청한 이후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상태가 된다. 객실 수를 제한함으로써 서비스는 매뉴얼이 아니라 '관계'에 가까워진다. 이 친밀감이 아만을 호텔이 아닌 머무는 공간처럼 느끼게 만든다. 아만은 규모 확장이 아닌 경험의 밀도를 선택했다. 작은 규모가 만들어내는 고요함이 시간의 속도를 늦춘다.
②공간과 서비스의 균형
건축과 자연, 빛과 동선, 재료의 질감으로 구성된 공간은 먼저 감정을 안정시킨다. 공간은 과시하지 않고 주변 풍경에 스며들며 눈에 띄기보다 오래 머물게 만든다. 그 위에 더해지는 것은 사람이다. 말을 건네기 전에 필요한 것을 먼저 알아차리며, 과하지 않게 다가오는 태도. 이 서비스의 결이 공간에 온기를 더한다.
흥미로운 점은 전 세계 어느 아만을 가더라도 서비스의 리듬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장소와 문화는 다르지만 경험의 감정선은 같다.이 균형이 유지되기 때문에 아만은 브랜드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③직감이 만든 장소, 그리고 하나의 세계
아만은 접근성이 아닌 직감을 따라 장소를 선택한다. 때로는 유네스코(UNESCO) 보호 지역 인근이거나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장소를 선택한다.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그 장소가 가진 이야기와 시간의 밀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아만은 좋은 위치의 호텔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여행의 목적지가 된다. 보트를 타고 들어가거나, 긴 이동을 거쳐 도착하는 과정속에서 이미 여행의 속도는 달라지고 공간에 도착하기 전부터 감정의 변화가 시작된다. 현재 아만은 약 20개국, 약 36개의 리조트와 호텔로 확장되었지만 각 리조트가 하나의 세계가 되도록 만드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규모는 커졌지만 경험의 깊이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시간을 디자인하는 브랜드 마케터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아만은 숙박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시간의 감각을 '디자인'하는 브랜드에 가깝다. 그래서 이 브랜드의 경쟁력은 눈에 보이는 차별화가 아니라 설명하기 어려운 기억의 밀도에 있다. 다녀온 장소를 이야기하기보다 다시 느끼고 싶은 감정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그것이 아만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가장 강한 자산이다.
결국 진짜 럭셔리는 더 많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만드는 경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만은 그 선택의 감각을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강하게 남기는 브랜드다.
고영하 AMC아시아 대표(브랜드 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