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 연주가의 조련자로 명성을 쌓아온 크리스토프 포펜은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 창설 첫해인 2020년부터 3년 동안 이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는 등 한국 청중과의 접촉면을 꾸준히 넓혀왔다. 그가 지난 25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아르떼필하모닉 2월 정기공연 지휘대에 섰다.
콘서트와 레코딩을 통해 접해온 지휘자 포펜은 악단 음색의 밸런스를 섬세하게 조정하는 점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영화에 비유하면 플롯보다 미장센으로 기억을 남기는 감독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날 마지막 곡으로 선택된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은 다소간 뜻밖이었다. 통상의 편성을 뛰어넘는 음향과 폭발적인 다이나믹스가 요구되는 곡이기 때문이다.
멘델스존 ‘핑갈의 동굴(헤브리디스 군도)’ 서곡으로 콘서트의 막이 열렸다. 침착하고 정적이랄까, 간결한 음량으로 곡이 시작됐다. 역시나 포펜은 곡의 강약대비를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대신 섬세하게 앙상블의 색상을 조율해 나갔다. 약간 채도가 낮은 듯이 들려오던 곡은 귀가 그 팔레트에 적응하자 섬세한 그라데이션을 펼쳐가기 시작했다. 전통적 미국식 배치대로 무대 오른쪽에 배치된 저음현이 풍요하고 섬세한 울림 속에 호소력있고 안정된 화성의 기초를 쌓았고, 그 바탕 위에 고음현의 선율과 내성부가 침착하고 안정된 선으로 음향의 화폭을 채워나갔다.
이어 포펜의 애제자이자 노부스 콰르텟의 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이 무대에 올랐다. 연주곡은 중기 낭만주의적 선율성이 두드러지는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이었다.
사제관계인 지휘자와 솔리스트의 긴밀한 호흡은 기대대로였다. 포펜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서로 정밀하게 듣기’는 지휘자와 협연자의 관계에서도 동일했다. 김재영의 솔로는 매력적인 음색을 한껏 부각하면서도 관현악의 일부처럼 움직였다. 2악장의 느리고 명상적인 부분에서 현악부의 내성부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부분이 특히 귀를 붙들었다.
포펜은 1980년대에 ‘케루비니 콰르텟’을 창설해 이끌며 찬사를 받았고, 김재영은 언급한 대로 ‘노부스 콰르텟’ 리더라는 이름이 익숙하다. 맞춰나가기의 대가인 스승과 제자가 익숙한 레퍼토리에서 호흡을 맞추니 더할 나위 없으리라는 짐작은 실제 연주로 나타났다. 강약이나 완급의 대비를 과장하지 않는 포펜의 음향적 풍경만들기는 동일하게 이어졌다.
두 사람의 호흡은 1악장과 2악장에서 완만한 선율선과 긴 프레이징으로 사색적이고 환상곡적인 면을 강조한 반면, 3악장에서는 템포를 당겨 곡이 주는 약동하는 느낌을 한층 틔워 올렸다. 객석은 열광적인 환호로 반응했다.
후반부 생상스 교향곡 3번의 서주부가 울리기 시작하자마자 흠칫 놀랐다. 훨씬 커진 3관 편성의 악단이 무대를 가득 채운 면도 있지만, 현악부만으로 두 개 화음이 이어지는 첫 부분부터 악단의 음색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화면의 선예도(線銳度)가 예리하게 조정되었다고 할까. 전반부에 화폭 위에 씌워져 있던 유리를 걷어낸 듯한 기분이었다. 전반부의 해상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저역 위주의 정숙하고 편안한 중기낭만주의 음색 대신 철강과 산업혁명의 시대인 생상스의 근대가 또렷한 현의 첫 화음연결부터 실감됐다.
역시나 포펜은 이 곡에서도 템포의 완급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데 관심이 없어 보였다. 1부 전반부나 2부 전반부에서 대부분의 지휘자가 속도를 끌어올리며 한껏 클라이맥스를 쌓아올리는 부분에서 그는 오히려 속도를 약간 낮추며 금관의 안정된 합주를 더 배려했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는 테토남(남성호르몬이 두드러지는 남자)이 아닌 지휘자의 오르간 교향곡이랄까. 자기가 나서서 불을 지피지 않지만 악보가 나타내는 뜨거움은 충분히 표현됐고, 화음 연결의 투명함이 악곡의 구조를 튼튼하게 유지하는 밑받침이 됐다.
현악 명교사 포펜이 엄정한 기준을 적용했을 현악부 뿐 아니라 목관 및 특히 금관의 믿음직한 연주는 올해 한경아르떼필하모닉의 연주에 믿음을 걸게 만들었다. 불균질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넘어 고급스러운 질감이 더해진 세련된 밸런스의 관악부를 이날 한경아르떼필은 자랑했다.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