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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으로 경제 활동에 필수인 보험이 가계와 기업의 가처분 소득을 잠식하는 '그림자 세금'으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후 변화에 따른 자연재해 증가 등 때문이다. 일각에선 글로벌 거시경제의 신용 창출 경로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자연재해 손실 2240억달러28일 글로벌 최대 재보험사 중 하나인 독일 '뮌헨 재보험'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 총손실 규모는 약 2240억 달러에 달했다. 이 중 보험으로 처리된 손실액은 108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작년 전체 보험 손실 중 980억 달러가 산불, 기습적인 돌발 홍수, 강한 뇌우 등 이른바 '비피크 위험'에서 발생했다.
토마스 블룽크 뮌헨 재보험 이사는 "2025년은 운 좋게 대형 허리케인의 미 본토 상륙을 피했지만 산불과 뇌우 등 비피크 위험이 보험 손실의 '뉴노멀'이 됐다는 것을 입증했다"며 "이런 극단적 기후 리스크에 대한 근본적인 적응 없이는 현재의 글로벌 리스크 분산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과거 통계 데이터가 미래의 위험 빈도와 심도를 예상하는 이른바 '모델링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글로벌 대형 보험사는 특정 지역과 위험군에 대해 보험을 전면 거부하거나 요율을 징벌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시장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민간 보험사들이 리스크 인수를 포기하고 철수한 빈자리를 각 주 정부가 운영하는 잔존시장이 메우고 있다. 잔존시장은 민간 보험사가 기피하는 고위험 계약을 떠안는 공적 보험시장을 뜻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의회가 지난달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12월 기준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잔존시장인 '페어 플랜'이 떠안은 총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7240억 달러로 2022년 9월 대비 230% 증가했다.
유효 계약 건수는 66만 8609건으로 같은 기간 146% 증가했다. 위험이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 페어 플랜 측은 최근 평균 35.8%의 대규모 요율 인상을 신청했다. 일부 고위험군 가입자의 경우 300%를 초과하는 폭등 통보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특정 지역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재무부 산하 연방보험국(FIO)이 2018년부터 2022년까지의 2억 4600만 건의 보험 증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평균 주택 보험료는 일반 물가 상승률보다 8.7%포인트 더 빠르게 증가했다. 기후 재난 고위험 지역의 평균 연간 주택 보험료는 2321달러로, 저위험 지역 대비 82% 높게 형성됐다. 보험사의 비갱신 비율 역시 80% 이상 높게 나타났다. 거시경제 악영향보험료의 급등과 보험사의 리스크 인수 거절은 거시 경제에 치명적이다. 해당 보험은 선택적 소비가 아니라 계약상 강제되는 '의무적 지출'이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 시스템에서 보험은 단순한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신용 공여를 유지하기 위한 법적 자격이다. 대출 계약의 기본 원칙상, 금융기관은 적절한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담보물에는 단 1달러의 신용도 제공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주택 및 부동산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모든 모기지 대출에는 담보물에 대한 적정 수준의 보험 유지가 필수다. 만약 차주가 보험 갱신을 거절당하거나 증가한 요율을 감당하지 못해 계약이 해지될 경우에는 대출 약정 위반으로 간주한다.
이는 대출 심사 단계에서부터 신용 창출을 억제한다. 미국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라프 마이젠잘 이코노미스트 연구진이 지난달 발표한 실증 연구 워킹페이퍼에 따르면, 연간 재산 보험료가 1000달러 인상될 때마다 차주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TI)이 악화해 모기지 리파이낸싱(금리 대환) 대출 승인이 거절될 확률은 약 2.3%포인트 증가한다.
이는 상대적 비율이다. 기존 거절률보다 15%에 달하는 가파른 상승 폭이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지난해 2월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 일부 지역은 기후 변화로 인해 앞으로 10~15년 이내에 보험 가입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며 "이는 모기지 대출 자체가 불가능한 '언뱅커블(Unbankable)' 지역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 대출과 첨단 기술 산업에서도 신용 인프라의 단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업 은행의 자산 건전성을 관리하는 바젤 III 체제, 일반적인 기업 여신 심사 원칙 등에선 화재 및 사이버 배상책임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자산은 유효한 담보로 인정받지 못한다. 무차별적인 랜섬웨어의 타깃이 된 사이버 보험 시장에서는 자격 문제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전국보험감독자협의회(NAIC)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사이버 보험 시장의 직접수입보험료 규모는 91억 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통계 집계 이후 사상 처음으로 전년 대비 7% 감소하는 역성장을 보였다. 지능화된 사이버 사고가 급증하자, 보험사들이 리스크 인수 심사 시 강력한 보안을 필수 조건으로 요구했다. 보안 수준을 입증하지 못한 수많은 중소기업이 보험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기술 기업에 사이버 보험 증권 갱신 실패는 공급망 벤더 계약에서 탈락과 벤처 대출의 마진콜(강제 상환) 통보로 직결될 수 있다. 알리안츠 SE의 귄터 탈링거 이사는 "보험이 가능하지 않다면 다른 형태의 금융 서비스 역시 존재할 수 없다"며 "이는 단순한 보험 산업의 위기가 아니라 기후와 통제 불가능한 리스크가 유발한 글로벌 신용 경색"이라고 지적했다. '그림자 세금' 고착 우려보험료가 조세 저항을 피하면서도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기계적으로 축소하는 '그림자 세금'으로 굳어질 우려도 나온다. 보통 재화의 인플레이션은 소비자가 구매 시기를 늦추거나 대체재를 찾는 등 여러 방식으로 대응이 가능하다.
그러나 모기지 유지를 위한 재산 보험이나 운전을 위한 자동차 책임보험은 지출을 줄이거나 포기할 수 없는 강제성을 띤다. 영국 보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의 재산(주택 및 상업용) 보험금 지급액은 통계 수집 이래 최고치인 61억 파운드에 달했다. 이 중 기후 관련 지급액만 12억 파운드로 전년 대비 14% 증가했다. 사상 최대치의 보상 비용 지출은 필연적으로 시차를 두고 전체 가입자의 갱신 보험료 인상으로 전가된다.
이런 고정비용의 기계적 상승은 중앙은행의 경기 부양 노력을 훼손할 수 있다. 중앙은행이 침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증가한 필수 보험료가 가계의 부채상환비율을 악화시킬 수 있어서다. 이는 실질적인 이자 경감 혜택이나 소비 진작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이 아직 한국 경제에선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 보험료 인상률은 1%대 초반 수준으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4세대 실손의료보험의 경우에는 보험료가 계속 오르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금리 이자 상환에 짓눌린 한계 차주와 자영업자에게 회피 불가능한 보험료 상승은 금융시장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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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