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만하니까 먼저 발표한 거죠.”
지난 1월 29일 현대카드가 가장 먼저 실적을 공개하자 카드업계에선 이런 말이 돌았다. 이번에 KB국민카드를 제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뒤따랐다. 그리고 예상은 현실이 됐다. 현대카드는 순이익 기준 국민카드를 넘어 3위로 올라섰다.
1위 자리는 삼성카드의 몫이었다. 선두권인 삼성카드와 신한카드는 지난해 나란히 최고경영자(CEO)가 교체되면서 올해 1위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결과는 삼성카드의 2년 연속 우위로 이어졌다.
◆삼성카드 1위 격차 확대
격차도 더 벌어졌다. 삼성카드와 신한카드의 2025년 순이익 격차는 1692억원으로 집계됐다. 2024년(893억원)보다 799억원 확대된 규모다. 1년 새 두 배 가까이 벌어진 셈이다.
삼성카드는 오랜 기간 카드업계 2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2024년 당기순이익 6646억원을 기록하며 신한카드(5753억원)를 앞질렀다. 전업 카드사 기준으로 2014년 이후 10년 만에 순이익 1위 자리를 탈환한 것이다.
삼성카드의 2024년 성과는 ‘확장’이 아닌 ‘비용 절감’의 결과에 가깝다. 자산을 불리는 대신 최근 몇 년간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마케팅비를 축소하는 등 비용 구조를 재편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출성 자산을 무리하게 늘리지 않고 레버리지도 낮은 수준에서 관리하면서 외형 성장률을 제한했다.
보수적인 전략은 오히려 수익성과 자산 효율성 지표를 개선했다. 업황 둔화와 조달비용 상승이라는 환경 속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한 전략이 실적 방어로 직결된 것이다.
2025년 들어선 신용판매 확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전략 기조에 변화를 줬다. 대표이사 교체와 맞물려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영업 구조를 손질했다. 핵심은 마케팅과 카드사업 부문의 재편이었다.
마케팅본부는 자동차 사업을 넘겨받아 신용판매와 자동차금융을 결합한 영업 기회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확장했다. 단순 카드 모집을 넘어 할부금융 등 연계 상품을 함께 키우겠다는 것으로 읽혔다.
카드사업본부 역시 기능을 재조정했다. 회원 유치와 가맹점 관리 등 영업 기능과 채권 회수·관리 기능을 하나로 묶은 통합 조직을 신설했다. 고객을 확보하는 단계부터 사후 여신 관리까지 전 과정을 일원화해 관리 강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외형 확대에만 초점을 두기보다 우량 고객 중심의 성장과 건전성 관리를 동시에 추구하는 구조로 재편한 셈이다.
스타벅스, KTX, 번개장터 등 인지도 높은 다양한 업종의 브랜드와 제휴를 맺고 약 9종의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를 선보이는 등 고객 기반을 넓힌 게 주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같은 기조 변화의 배경에는 CEO 교체가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전임 대표의 임기가 상당 부분 남아 있는 상황에서 단행된 인사였던 만큼 업계의 관심이 컸다. 새 수장인 김이태 사장은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과장을 지낸 외부 출신 인사다. 2016년 삼성전자에 합류한 이후 전략·IR·대외협력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이후 삼성벤처투자 대표를 맡아 운용 규모를 확대하고 수익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 ‘딥 체인지(Deep Change)’를 경영 키워드로 제시하며 사업 구조의 전환을 예고했다.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닌 형식과 틀을 바꾸는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다. 올해 들어 관련 전략이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삼성카드는 기존 디지털혁신실 산하 조직이었던 ‘모니모’ 조직을 본부급으로 격상했다. 모니모는 삼성금융네트웍스가 운영하는 통합 금융 플랫폼이다. 이를 축으로 카드 결제 데이터와 보험·증권 계열사의 자산·보장 정보를 연계해 고객 분석 역량을 고도화하겠다는 구상이다. 데이터 결합을 통해 마케팅 효율을 높이고 개인별 맞춤 상품 추천 정확도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 3위 도약
현대카드의 추격도 심상치 않다. 국민카드를 제치고 3위에 오른 데 이어 2위 신한카드와의 격차도 1000억원대 수준까지 좁혔다. 상위권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흐름이다.
업황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지난해 주요 카드사 6곳(삼성·신한·현대·국민·하나·우리)의 순이익 합계는 2조1708억원으로 전년보다 6% 이상 감소했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카드론 영업 위축, 조달금리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전반적인 수익성이 압박을 받았다.
이 같은 환경 속에서 현대카드는 나홀로 두 자릿수 이익 증가율(10.7%)을 기록하며 차별화된 성적표를 내놨다. 수익 기여도가 높은 프리미엄 상품 비중을 확대하고 상품 체계를 단순화해 비용 효율을 높인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부티크(Boutique)를 출시하며 우량회원 공략에 나섰고 11년 전에 단종됐던 알파벳카드를 부활시키는 등 신규 브랜드를 선보이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특히 국내에서 애플페이를 도입하며 해외 결제 경쟁력을 강화한 점도 실적 개선에 힘을 보탰다.
삼성카드, 현대카드 등 기업계 카드사가 신용판매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유지해 왔다면 은행계 카드사들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우리카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순이익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은행 채널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구조상 카드론과 현금서비스 등 금융 부문 비중이 높았고 이는 대출 규제와 금리 변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은행계 반격 준비?
하지만 “신한카드가 체질 개선을 마치면 반등 속도는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비용 구조 정상화 이후 순이익 격차를 단기간에 뒤집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신한카드는 2007년 LG카드와의 합병을 통해 단숨에 시장 1위에 올라선 이후 탄탄한 영업 인프라와 브랜드 경쟁력을 기반으로 업계 최상위권을 유지해왔다. 이러한 저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평가가 많다.
현재 순이익 기준 2위로 내려앉았지만 본업 경쟁력까지 흔들렸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2025년 개인 신용판매 취급액도 업계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고 신용판매 점유율도 20%대를 유지하고 있다. 신용판매 실적은 현금서비스·카드론 등을 제외하고 국내외에서 신용카드로 승인한 금액을 합산한 수치다. 카드사의 체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다. 2025년 영업수익(매출)도 5조9328억원으로 카드사 중 1위다.
그동안 수익성에 부담으로 작용해 온 ‘더모아’ 카드 이슈도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들어선다. 2026년 1월 유효기간 만료를 끝으로 관련 부담이 정리될 예정이다. 과거 비용 요인이 해소되면서 향후 수익성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0년 11월 출시된 더모아 카드는 5000원 이상 결제 건에 대해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구조였다. 그러나 일부 이용자들이 결제 금액을 5999원 단위로 나누는 방식으로 적립 한도를 극대화하면서 당초 예상보다 많은 비용이 발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해당 카드를 활용해 매달 수십만원 규모의 포인트를 적립했다는 사례가 공유되기도 했다. 신한카드는 공식적으로 더모아 카드로 인한 손해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약 1000억원 손실을 봤을 것이란 추정이 나온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박창훈 신한카드 사장은 조직 효율화와 비용 절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이은 희망퇴직 단행은 고정비를 낮추고 수익성 중심 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업계 4위로 내려앉은 KB국민카드 역시 반등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순이익은 감소했지만 건전성 지표는 오히려 뚜렷하게 개선됐기 때문이다.
연체율은 2025년 말 기준 0.98%로 전년 대비 0.33%포인트 하락했고 고정이하여신(NPL) 비율도 1% 아래로 떨어졌다. 고위험 자산을 축소하고 채권 회수 기능을 외주에서 내부 조직 중심으로 전환한 데다 부실채권을 선제적으로 매각하는 등 사후 관리 강화를 병행한 결과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