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CEO의 치트키, 신뢰

입력 2026-02-25 17:50
수정 2026-02-26 00:04
조직을 이끌다 보면 숫자와 전략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돌아보게 되는 것이 우리의 상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조직 안에 흐르는 분위기와 서로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다. 그런 상태는 시간이 지나며 신뢰를 쌓는 바탕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방향으로 흐를 수도 있다.

신뢰는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약속을 지키는 일, 말과 행동의 일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선택 같은 사소한 행동이 쌓이며 형성된다. 하지만 신뢰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한 번 금이 가면 회복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고, 관계의 소모도 뒤따른다. 그래서 신뢰는 평소에는 가볍게 여겨지지만, 잃고 나서야 그 무게를 실감하게 되는 자산이다. 비즈니스에서 신뢰는 두 가지 층위로 작동한다. 계약과 규칙, 시스템에 기반한 ‘거래적 신뢰’가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쌓이는 ‘관계적 신뢰’가 있다. 전자는 예측 가능성을 제공하고, 후자는 위기 속에서도 조직을 움직이는 힘이 된다. 블록체인의 사슬 구조가 쉽게 끊어지지 않듯, 조직의 신뢰 역시 작은 약속들이 연결되며 축적된다.

신뢰가 쌓이면 조직의 속도와 성과는 함께 높아진다. 설명과 검증에 드는 비용이 줄고, 의사결정과 실행 과정에서의 마찰이 감소한다. 이런 순간, 신뢰는 조직 운영의 ‘치트키’처럼 작동한다. 조직 안의 신뢰는 리더의 말과 결정뿐 아니라, 구성원 각자의 태도와 선택에 의해 유지되거나 흔들린다. 이 흐름은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협력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고객과 투자자,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로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리더의 역할은 분명해진다. 무엇을 맡기고 무엇을 끝까지 책임질지를 정하는 문제를 넘어, 조직 안에서 신뢰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이 현장에서 지켜지도록 만드는 일이다.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는 리더의 판단에 달려 있다. 동시에 그 기준은 구성원 각자의 일상적인 판단과 행동을 통해 실체를 갖게 된다. 신뢰는 위에서 내려오는 선언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경영자로서 자주 다시 펼쳐보는 책, 스티븐 코비의 <신뢰의 속도>는 신뢰가 조직과 개인의 성과를 바꾸는 핵심 요인임을 강조한다. 신뢰가 높아질수록 실행은 빨라지고 비용은 줄어든다는 메시지는 현장에서 체감하는 현실이기도 하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조직은 절차와 통제가 늘어나며 느려지고, 결국 기회 앞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신뢰가 사라진 사회를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다. 불신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협력의 비용이 급격히 커지고, 갈등은 일상이 된다. 그런 사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 기업과 조직에 쌓인 신뢰는 결국 사회 전반의 신뢰로 이어진다. 리더의 선택과 구성원의 태도 하나하나가 사회 전반의 신뢰 수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일 것이다.

한경에세이를 연재하는 동안 여러 현장에서 건네주신 조언과 피드백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 글을 통해 나눈 생각들이 각자의 현장과 일상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