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 남는 거 소름, 돈 아깝다"…고대 졸업생도 외면 [이미경의 교육지책]

입력 2026-02-25 15:02
수정 2026-02-25 15:17

25일 고려대를 졸업한 김모씨(24)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졸업식 스냅 촬영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 중앙광장과 본관 앞 등 캠퍼스 주요 장소를 돌며 자연스러운 스냅 사진을 남기기 위해서다. 김씨는 “졸업앨범을 사지 않는 대신 자연스러운 사진을 따로 남기려고 한다”며 “2~3장만 실리는 졸업앨범에 5만~6만원을 쓰느니 같은 비용으로 사진을 수백 장 남기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굳이 안 꺼내 본다"…종이 앨범 외면대학 졸업식을 기록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대다수 졸업생이 학교 주관 졸업앨범 촬영에 참여하고 앨범을 구매·보관했지만 최근에는 관련 수요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이날 학위수여식을 연 고려대의 졸업앨범 판매 부수는 350권에 불과했다. 전체 졸업생(3885명) 중 9%만 앨범을 구매한 것이다.

졸업앨범 수요 급감의 주요 배경으로는 사진 보관 방식이 디지털 중심으로 바뀌면서 전통적인 종이 졸업앨범의 효용이 떨어진 점이 꼽힌다. 휴대폰과 클라우드에 사진을 대용량으로 손쉽게 저장할 수 있게 되면서 앨범을 '필수 기념품'으로 여기는 인식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박정아 씨는 "과거 사진을 보기 위해 종이앨범을 꺼내 보는 경우는 드물지 않으냐"며 "학과 동기들 중 졸업앨범을 샀다는 경우는 못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딥페이크 등 불법 합성 범죄가 확산하는 가운데, 친분이 없는 동문에게까지 자신의 사진이 공개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졸업앨범 촬영을 기피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연세대 졸업생 최모씨(26)는 “동문이라고 해도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내 사진이 남는 건 부담스럽다”며 “앨범이 한 번 제작·배부되면 이후 사진의 공유 범위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졸업앨범 촬영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발생한 사이버성폭력범죄 3411건 가운데 딥페이크 범죄는 1553건(45.5%)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단체앨범 대신 개인 스냅졸업앨범 수요가 줄어드는 대신 스냅 촬영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과거 단체앨범 촬영처럼 증명사진식의 획일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데다, 본인 중심의 촬영이 가능하고 보정도 상대적으로 더 세심하게 이뤄져 만족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스냅 작가를 섭외한 김소아씨는 “촬영 장소와 포즈를 직접 정할 수 있어 만족도가 높았다”며 “무엇보다 내 사진만 신경 써서 편집·보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요를 반영해 일부 대학은 졸업앨범을 사실상 ‘개인 앨범’ 형태로 바꾸기도 했다. 서강대는 2021년부터 졸업앨범을 개인 앨범 형태로 전환했다. 제작 방식 변경에 앞서 실시한 학생 설문조사에서는 ‘기존 단체 앨범은 본인 분량에 비해 부피가 커 비효율적’이라는 응답이 43.3%로 가장 많았다. 이어 ‘내가 속한 동아리의 단체 사진을 실을 수 없다’(32.6%), ‘이름·사진 등 개인정보 유출이 걱정된다’(15.6%)는 답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개인앨범 수요 역시 많지 않아, 학교 마크가 찍힌 ‘졸업앨범’ 자체가 점차 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성균관대는 단체 앨범 수요 감소에 대응해 2024년부터 개인 앨범 형태로 판매를 시작했는데, 올해 판매 부수는 100부에 그쳤다. 전체 졸업생 2769명 중 3.6%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최근 학생들은 단체앨범 속 획일적인 사진보다 개인 만족도를 더 중시한다”며 “대학이 일괄 계약한 업체를 이용하기보다 촬영 스타일·보정 방식 등을 고려해 자신이 선호하는 업체를 직접 선택하려는 수요가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이 제작 업체를 정하는 개인 앨범 형태 역시 선택의 폭이 제한되면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졸업앨범’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